여성농업인들의 자립과 돌봄
제철 꾸러미로 안정적 소득

 
 
 
 
 
 

| 싣는 순서 |

①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새로운 방법
② 농업을 통한 치유와 직업재활, '행복농장'
③ 청년들의 인큐베이터 '청송해뜨는농장'
④ 네트워크 구축으로 역량 강화 '완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⑤ 여성농업인을 위한 언니네텃밭
⑥ 이방인들의 지역정착에 도움 '야호해남영농조합법인'
⑦ 농어촌지역에서 필요한 사회적 농업

 

언니네밥상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산하 식량주권사업단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지역공동체들이 만들어지고 언니네텃밭 여성농민생산자협동조합을 조직해 전국단위로 운영되고 있다. 언니네밥상은 강원도 횡성에서 시작됐다.

시골 언니들이 기른 제철 농산물들을 모아 꾸러미를 만들어 보내는 '언니네밥상'은 여성 농업인의 자립과 권익 향상, 돌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여성 농업인의 권익 향상과 토종 종자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펼치던 횡성여성농민회는 지난 2009년 4월 철에 맞는 작물을 생태농업으로 길러 소비자에게 공급하고자 언니네텃밭을 시작했다.

당시 콩을 판매하기 어려워 두부로 만들어 팔기 위해 두부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던 여성 농업인들은 두부와 함께 제철 농작물을 꾸러미로 만들어 판매를 시작했고 로컬푸드붐과 맞물리면서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었고 안정적인 공급도 가능해졌다.

이숙자 횡성언니네텃밭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는 "처음 시작할 때는 여성 농업인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었고 농업경영체 등록도 남편만 경영주로 되어 있었다"며 "여성 농업인이 농촌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작은 것부터 바꿔나가자고 생각해 통장 갖기, 공동경영주 등록 등의 활동을 함께 펼쳤다"고 말했다.

 
 
 
 

남성 중심의 농촌사회에서 여성 농업인들의 위치는 높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고 싶어도 가족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텃밭을 만들어 따로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남편들의 반대도 심했다.

60대 이상의 여성 농업인들이 텃밭을 일구고 매달 50만원 이상의 고정수입이 자신의 통장에 들어오면서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자 핀잔을 주던 남편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런 것도 심어보라며 작물도 추천해주고 텃밭일도 거들어주고 있다.

횡성 언니네텃밭은 횡성공동체와 횡성오산공동체, 장터공동체 등 3개의 공동체가 운영되고 있다. 횡성공동체와 횡성오산공동체는 제철 꾸러미, 장터공동체는 온라인 판매를 중점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동체에서는 여성 농업인들이 텃밭에서 매주 한 번씩 생산한 농작물을 모아 제철 꾸러미를 만든다. 꾸러미에는 두부와 계란, 채소 3가지, 곡식, 간식, 반찬 등이 담겨 2만6500원에 판매한다. 소비자들은 꾸러미의 내용물을 고를 수는 없다.

언니네텃밭은 월례회의를 통해 어떠한 작물을 심고 기를지 의견을 나눈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원칙으로 텃밭을 가꾸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중복되지 않게 작물을 분배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자신들이 가져온 작물로 꾸러미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반찬도 함께 만든다. 구성원들의 절반 이상이 고령의 여성 농업인들로 구성되어 있어 매주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기능도 겸하고 있다.

지난 2019년 농림축산식품부의 사회적농업 활성화 지원 신규사업자로 선정되면서 지역의 고령 여성 농업인과 귀농·귀촌인, 다문화여성 등을 위한 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꾸러미와 온라인 판매 등은 함께하지 못하지만 지원사업으로 마련한 400평의 텃밭에서 농업교육을 진행하고 꽃꽂이와 영화감상 등 문화체험도 진행하고 있다.

또 언니네밥상을 운영하며 공동체 구성원 외에도 지역의 고령 여성 농업인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돌봄활동도 펼치고 있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반찬을 만들어 배달하는 것으로 추진하고 있다.

언니네텃밭은 무분별한 농산물 수입과 생산효율 위주의 농정으로 소농은 설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대안을 찾고자 했다. 텃밭은 가족이 먹는 작물을 기르는 곳으로 안전한 먹거리를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농촌 여성 농업인들이 작은 텃밭에서 관행농업이 아닌 생태농업으로 기른 먹거리를 공급하는 것이다.

횡성에서 시작된 언니네텃밭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식량주권사업단을 통해 전국에 생산자공동체를 만들며 퍼져 나갔고 협동조합으로 발전하게 됐다. 전국에 20여 개의 공동체가 구성돼 꾸러미를 비롯해 각종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언니네텃밭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생산자가 5명 모여야 구성할 수 있다. 생산자들은 개인당 최대 500평의 텃밭에서 생태농업을 원칙으로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고 있다. 자신들이 농사를 짓던 땅에서 500평은 제철 꾸러미를 위한 텃밭으로 만들고 제초제를 쓰지 않는 생태농업으로 농사를 짓는다.

구성원들은 자주 인증제를 통해 생산물을 검증한다. 따로 친환경 인증을 받지 않았어도 농사 짓는 사람들은 약과 비료를 뿌렸는지 확인할 수 있기에 교육과 검사도 자체적으로 철저히 하고 있다.

언니네텃밭은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생산자가 함께 만드는 공간'을 추구한다. 여성 농업인은 내 가족에게 먹이는 것과 같은 건강한 방식으로 먹거리를 생산하고 소비자는 생산자들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여성 농업인의 자립과 농촌공동체 재건을 지원하게 된다.

소비자들과의 신뢰는 농업현장을 둘러볼 수 있는 체험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소비자는 매년 1~2회씩 공동체를 방문해야 한다. 자신이 받아보는 꾸러미에 담긴 작물들이 어떻게 자라고 만들어지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체험해보면서 농업과 농촌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낀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는 농업이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이 대표이사는 "언니네텃밭은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하는 공동체가 아닌 여성 농업인들의 역량강화를 위해 정치, 정책 등 사회 전반에 대한 교육을 비롯해 SNS, 컴퓨터 활용 등도 펼치고 있다"며 "고령농들이 은퇴하면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줄어들었지만 각종 교육 활동을 통해 귀농·귀촌, 다문화여성 등 후배여성농업인들이 합류하며 세대교체를 이뤄가고 있다"고 말했다.

언니네텃밭은 사라져가는 농촌 공동체를 지속가능한 공동체로 만들고 있으며 공동체는 생산자들이 모여 구성했지만 소비자들이 꾸러미와 농산물을 구입하면서 공동체가 지속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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