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교사, 시인)

 
 

"불행하세요? 그럼 그 불행을 제게 파시죠~ 어떤가요, 파시겠습니까?" 누군가 당신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당신은 팔 수 있는 불행이 있을까요?

일단 '나는 불행하다'고 전제해 보죠. 그 불행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아침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일이거나, 쇼핑몰에서 본 어떤 물건을 쉽게 구입할 수 없는 주머니 사정이나, 왁자하게 떠들고 놀아줄 벗이 지금 없다거나, 뭐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겹치고 있다거나, 어느 연예인처럼 잘 생기지 못했다거나, 뭐 그렇고 그런 일들이 나를 붙들고 있는 것들이 아닐까요?

산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어디선가 날아온 불행이 순간 나를 지배하죠. 그리고 그 식민의 시간이 지속되며 나를 불행에 휩싸이게 하죠. 때론 순간일지라도 기쁨이 나를 스치기도 하죠. 그런데 이 기쁨이란 존재는 순해 빠져서 나를 지배하려 들지도 않고 쉽게 떠나려 든다는 게 문제죠. 내게는 잡히지 않는, 약오르게도 옆 사람에게는 월척이 되어 잡히는 물고기처럼 근처를 배회하며 깐죽거리기 일쑤죠. 그것이 또한 나를 슬프게 하고 불행으로 몰아넣기도 하고요.

자, 그럼 당신의 불행을 내게 파세요. 그런데 어떻게 파실 건가요? 그 방법은 당신이 찾으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팔아줘야 제가 살 수 있거든요. 만약 그 방법을 못 찾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간직할 수밖에 없겠죠. 제 생각에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이 과감하게 버리거나 무시하거나 팽개쳐버리는 것인데 당신이 그런 결단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당신의 불행은 어떤 꼴을 하고 있나요? 뭔가 모자라거나 못 미치거나 찌그러진 모양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말입니다. 그 모자라고 못 미치고 찌그러진 모양을 펴서 파시기 바랍니다. 그 부족한 것들도 내 일부일진대 남들에게 내 일부가 부족하다고 구박이나 받는다면 그것도 유쾌하진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불행이란 것이 사실 '나'의 문제가 아닐 경우가 많죠. 우리는 때때로 나와 불행을 동일시하는 습성이 있죠. 그러다가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 '내가 왜 그걸 가지고 그렇게 힘들어 했지?' 하는 억울함이 들 때가 있죠. 그 불행과 이별한 후에 보니까 '그게 내가 그렇게 매달릴 무엇이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예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죠. 여기저기 불행을 다 수집하여 '불행 박물관'을 차리면 어떨까? 굳이 이유를 댄다면, 불행은 행복에 비해 참 많은 이야기를 품잖아요.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불행=추억덩어리'죠. 너무 아려서 울게도 하고 그러다 미소 짓게 하며 나를 위로해 주죠. 카타르시스를 간직한 고통이라고나 할까요?

생각해 보세요. 한 자리에 그 절절한 얘기들을 모아둔 모습을요. 우리가 어떤 박물관을 찾았을 때 스쳐 지나치던 많은 경험들이 있죠. 그 안에도 수많은 얘기들이 들어 있었겠지만 그들에게 감동이 있는 고통을 느끼지 않잖아요. 그래서 스치듯 지나치는 거잖아요. 물론 관련 있는 전문가나 학생이나 또 어떤 이익과 연관된 사람들이야 쉽게 지나치지 않겠지만요.

아무튼 누구나 간직하고 살아가는 불행이 한 자리에 모였다고 상상해 보세요. 거긴 어떤 유명인이나 갑부나 실패자들이나 평범해 보이지만 눈물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겠죠. 제가 그 박물관을 차리면 꼭 시간 내서 들러주시길 바랍니다.

그 전에 말입니다. 당신의 불행을 당신의 마당에 쫘악 펼쳐 보세요. 어릴 적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슬픔이나 고통이나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쭈욱 널어놓고 그 날의 자신과 대화를 해 보길 권합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작은 박물관에 전시해도 좋겠지요. 잘 꾸며 놓으시길 바랍니다. 제가 찾아갈지도 모르니까요. 혹 제가 찾아가면 그 불행에 대한 얘기를 멋지게 설명해 주시길 부탁할게요. 제가 당신과 함께 울 수 있도록 말예요. 그리고 서로 손을 잡아주고 웃을 수 있도록 줄거리가 있는 불행이 거기 있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당신은 이제 불행을 아끼게 되어 팔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어쩔 수 없죠. 당신이 그 불행을 간직할 마음이라면요. 간직하는 동안 당신이 행복하기를 기도하죠. 혹시나 여전히 팔 마음이라면 언제든지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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