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지면서 햇볕이 따스하다고 느끼게 되는 계절이 오면 '가을 탄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이 때가 되면 이유 없이 무력감을 느끼고 불안해지기도 한다. '우울증이 이런 것인가'하는 고민도 든다. 이를 의학적으로 '계절성 기분 장애'라고 한다.

햇볕을 쬐는 시간이 줄어들면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 수치가 낮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보다 위도상 북쪽에 위치한 독일에서는 햇빛 부족으로 정신분열증을 앓는 사람이 많다. 이로 인해 심리학 연구도 앞서있다.

흔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한다. 사실 일조량이 줄고 낙엽을 보며 나타나는 의욕 상실은 남녀 모두에게 나타난다. 유독 남자들 사이에 '가을 탄다'는 너스레가 '술 한 잔의 명분'을 삼으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근데 이런 계절성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다만 일반 우울증과는 다르다. 우울해지고 의욕이 상실되는 증상은 엇비슷하지만, 여전히 식욕도 왕성하고 잠도 잘 자는 게 다르다.

'가을'하면 떠오르는 가수가 있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가을을 풍미했던 최헌. 암과 투병하다 64세의 일기로 2012년 세상을 떠난 그는 많은 가을 노래를 남겼다.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나 혼자서 걸었네 미련 때문에/흐르는 세월 따라 잊혀질 그 얼굴이/왜 이다지 속눈썹에 또다시 떠오르나/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딜 갔나/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이는/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 1978년 늦가을 세상에 나온 '가을비 우산속'은 이듬해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오동잎 한잎 두잎 떨어지는 가을밤에/그 어디서 들려오나 귀뚜라미 우는 소리'로 시작되는 '오동잎'은 올해로 발표된 지 43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노래방의 단골 레퍼토리이다.

가을을 노래한 시인으로 강진 출신 김영랑(1904-1950)을 빼놓을 수 없다. '오-매, 단풍 들것네/장광(장독대)에 골불은(골붉은) 감닙(감잎) 날러오아(날아와)/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쳐다보며)/오-매, 단풍 들것네///' 1930년에 발표된 '오매, 단풍 들것네'는 장독대에 떨어진 낙엽에서 가을이 왔음을 전라도 사투리로 정겹게 엮어냈다.

바야흐로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계절이다. 지난달 말 설악산에서 시작된 단풍이 하루 20~25㎞의 속도로 남하해 무등산에 도착했다. 한반도의 마지막 단풍이 머문다는 두륜산에도 다음주(29일께) 시작된다. 대흥사를 품은 두륜산의 단풍은 다음달 11일께 절정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단풍 절정기는 산 전체의 80% 정도가 물들었을 때를 말한다. 이 때가 되면 대흥사 길목의 단풍 터널에도 인파가 몰릴 것이다.

다만 붉고 노란 단풍의 속내를 알고 즐기면 단풍의 진미(眞味)를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단풍은 혹독한 겨울나기를 준비하기 위한 나무(활엽수)의 고육책이다. 햇빛과 수분 등이 부족한 겨울철에는 양분을 만드는 광합성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잎에 공급되는 수분도 막아야 얼어 죽지 않는다. 이런 결과물이 바로 단풍으로 나타난다.

코로나19가 사라질 듯 하면서도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두더지게임을 하듯이 환자들이 끝없이 튀어 나온다. 그렇더라도 가뜩이나 움츠러든 가슴을 가을의 향연에서 활짝 펴보는 게 어떨까. 코로나 또한 언젠가는 추풍낙엽(秋風落葉)의 신세가 될 것이다. 그게 세상의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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