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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 재제주해남군향우회장 인터뷰
양동원 편집국장  |  dwyang9@h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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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12  15: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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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종식되면 향우들과 고향 찾겠다"

 

▲황산 출생(1959년)
▲황산초·중, 광주송원고, 제주대 졸업
▲은퇴재무설계 전문가(현재)
▲예향미디어 편집국장(현재)
▲재제주호남향우회 사무국장(현재)

 

조선시대 후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판소리 단가 '호남가'(湖南歌)에는 '제주어선 빌려 타고 해남으로 건너갈 제'라는 구절이 나온다. 제주에서 출발해 호남지역 50여 곳을 유람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제주사람들이 육지에 오를 때 해남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해남이 관문이었던 셈이다. 제주도는 조선 태종 무렵부터 전라도 관찰사가 관할해오다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분리됐다. 그런 만큼 제주도와 전라도는 한 몸이었다. 현재 제주특별자치도의 인구는 67만 여명. 호남 출신이 17%인 11만4000여명에 달한다. 이 중 해남 출신은 10% 정도인 1만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제주에는 해남향우회가 2개 있다. 제주시를 중심으로 한 재제주해남군향우회와 지리적으로 반대편에 위치한 서귀포시의 재서귀포해남군향우회가 그것이다. 해남향우회가 양분된 것은 제주도의 생활권이 달라 향우들 모임에 제한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해남인들의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는 재제주해남군향우회 김상곤(61) 회장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1989년 해남군민회로 출발
국제항 건너편에 해남촌도

 

- 제주에서 삶의 터전을 삼게 된 계기는.

△황산에서 태어나 황산초·중학교를 거쳐 광주송원고를 졸업했다.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갔었는데, 이 때 제주와 인연을 맺게 됐다.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았던 꿈이 제주대학 해양과학대학 승선학과 진학으로 이어졌고, 해군ROTC 과정을 마치고 해군 장교로 군복무를 하게 됐다. 제주에서 국제화재해상보험(현재 MG손해보험), AIG생명(현재 AIA생명) 등 보험사에서 줄곧 근무했으며, 지금도 GA코리아 손·생보종합보험회사에서 본부장으로서 은퇴재무설계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에서 40년 넘게 살아오고 있다.

   
▲ 작년 7월 명현관 해남군수와 향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김상곤 재제주시해남향우회장 취임식.

- 향우회 소개를 한다면.

△재제주해남군향우회는 1989년 5월 21일 '해남군민회'로 발족한 게 출발점이다. 용봉민 회장이 초대부터 7대까지 역임한 뒤 서강배(8~9대), 조찬우(10~11대), 김길철(12~13대), 한철종(14~15대)에 이어 지난해부터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취임식에는 명현관 해남군수와 이순이 당시 군의회 의장, 서해근 의원, 중학 동창으로 황산면장을 지낸 박석순 씨 등이 바다를 건너와 축하해줬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전해드리고 싶다.

- 재제주해남향우회 활동은.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재제주호남향우회에는 35개 지역·동향우회가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 속한 해남군향우회 회장을 지난해 7월부터 역임하고 있다. 향우 소식을 주로 담고 있는 '예향미디어' 편집국장도 맡고 있다. 이 신문은 월간으로 12면을 발행하고 있으며, 기자 6명과 함께 향우들의 신문을 만드는 게 가장 보람된 일이다. 제주에서는 호남인의 비중이 17%에 달해 선거 때에는 호남표를 얻어야 당선된다는 말이 있다. 호남향우회가 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향우회는 해마다 해남군민의 날과 명량대첩 축제를 찾아 고향분들과 함께 한다. 제주에서 해남군 주최로 쌀과 김치 판매행사를 하는데, 향우회에서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해남 읍면을 대상으로 감귤보내기 운동도 펼친다. 제주에는 국제부두항 건너편에 해남촌이 있다. 지금은 옛 명성에 퇴색됐지만 한때 해남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 해남향우회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일은.

△향우회원들이 한때는 120명 정도 모여 활동했으나 지금은 다소 주춤한 상태이다. 해남향우회관도 마련하려고 준비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1억5000만원이 넘는 모금액을 회원들에게 반환하거나 향우들의 해외여행에 사용하고, 지금은 3000만~4000만원 정도의 회비만 남겨놓았다. 향우회 입회비도 80만~100만원에서 10만원으로 낮추고, 회비도 월 3만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등으로 한시적으로 월 2만원으로 책정했다. 지금은 별도 향우회 사무실이 없고, 지난해 오픈한 신제주 호남새마을금고 4층을 임시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정기모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가 물러나면 모든 회원들이 함께 고향 방문을 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친목을 위해 해외여행도 추진할 생각이다.

- 해남은 자주 방문하는지, 교류는.

△향우들의 부모님이 거주하고 계시기 때문에 애경사 때 방문하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공룡박물관 앞에 부모님이 물려주신 조그만 논이 있지만, 친구들이 그리울 때 축제행사 등을 겸해서 찾는다. 지금도 중학교 동창들과 교류를 자주 하고 있다.

- 고향에 대한 자부심과 바라는 게 있다면.

△땅끝해남의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학창시절 자주 찾았던 숲속의 대흥사, 어릴 적 황포에서 배를 타고 목포에 갔던 추억, 공룡발자국인지도 모른 채 수영하고 뛰어 놀았던 우황리 바닷가 등등. 아름다운 두륜산은 언제나 오르고 싶다. 해남 바닷가 소년으로 자라나 오대양 육대주를 돌아보는 항해사와 해군 장교가 된 것은 고향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고향이 더욱 더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김치와 고구마, 쌀, 해산물 등과 관련된 좋은 소식들이 지속적으로 전해지면 좋겠다. 보다 잘사는 고향 해남을 기대한다.

- 살아오면서 철학이 있다면.

△가훈인 '인간답게 살며 범사에 최선을 다하자'를 좌우명으로 살고 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때문에 성지순례와 사도바울 여정, 기독교 선교기념 여행, 그리고 교회를 통해 다녀오는 해외선교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여행이야말로 최고의 행복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90개가 넘는 국가들을 방문했으며,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100개국 이상 여행을 하는 것이다. 지난 9월 미국을 횡단하는 여행이 예정되었는데 코로나19로 취소되기도 했다.

- 건강유지 비결이 있다면.

△취미로 골프와 낚시를 즐기고 올레길을 걸으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비록 작은 체구이지만 대학축제 때에는 마라톤 선수로 발탁되어 학과 대항축제에서 9등으로 골인해 총장상을 받기도 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지.

△한때 해남신문 제주 객원기자로 활동했다. 다시 고향 소식을 주고받고, 향우들에게도 따뜻한 고향을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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