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규(진이찬방 식품연구센터장)

 
 

해남의 가을은 옥천평야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대표 브랜드가 된지 오래된 '한 눈에 반한 쌀'이 일찍 익어가는 탓에 누런 황금벌판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남의 가을은 풍성해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어느 마을을 가더라도 널따란 벌판이 있고 곡식이 누렇게 익어가는 장면은 가을에 해남에서 볼 수 있는 장관이다. 필자는 가을에 두륜산에 자주 오른다. 동서남북이 다 트인 두륜산에 올라 해남의 넓은 평야를 바라보면서 익어가는 곡식을 바라보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된다. 해남의 가을은 들판을 바라보는 누구에게나 행복감을 가져다줄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자영업자는 매출이 떨어져 힘들어 하고, 일정 장소에서 집단으로 배움을 익히는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되다보니 각종 학습이 멈추고 있다.

또한 가깝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도 어렵고 제한되는 영역이 점차 확대되면서 삶의 활력이 덜하다. 그래도 희망을 갖고 버틸 수 있는 이유는 가까운 이웃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서다.

해남은 도회지보다 희망이 있다고 하고 역동적인 삶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수확할 수 있는 농작물이 있어서이다. 해남의 가을은 아침에 일어나면 옅은 안개가 끼어 있고 그 사이로 황금색으로 익어가는 벼이삭을 볼 수 있다. 밭고랑 사이로 고구마 잎이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을 아는지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있는 계절이다. 여름 내내 땀 흘리며 따서 말리던 고추도 생을 다해가고 누런 호박도 수확이 끝물이다.

해남의 가을은 절임배추의 고장답게 배추를 심는 것으로부터 알 수 있다. 그 넓은 밭마다 배추 모종을 옮기기에 바쁘고 한쪽 밭에서는 마늘 심는 모습이 여유롭다. 해남이 시작되는 계곡들에서부터 땅끝까지, 우수영 화원반도까지 이어지는 해남 벌판은 우리나라 어느 지역보다도 가을이 풍성하다.

지금까지 코로나19가 발을 딛지 못하는 청정지역의 해남은 특히 가을이 아름답다. 해남의 가을을 흉내 내기 어려운 자연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같다고나 할까? 풍성한 먹거리가 있는 해남이 그래서 사랑스럽고 풍광이 아름다운 곳곳에서 살고 있는 군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다. 해남의 가을은 아름답고 풍성할 뿐만 아니라 군정마저도 코로나19로 멍든 군민의 가슴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따스함이 보인다.

제조설비나 공장이 없고 농업을 기반으로 한 해남의 특성은 과거 공업도시를 부러워 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농업이 주는 선물이 커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열대 기후로 변하고 있는 자연환경에 맞게 농작물의 재배가 성하고 먹거리의 가치가 올라 시간이 갈수록 농촌 마을의 수입도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해남의 가을은 어느 지역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멋이 있다.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내륙은 가을이 되면 황금벌판으로 변하고 흑석산(옛 가학산)에서 시작되는 단풍은 금강산을 따라 두륜산에서 절정을 이루다 달마산으로 간다. 학동과 진도 녹진 사이의 협수로로 약 20m의 수심이지만 넓은 바다에서 좁은 해협으로 들어오는 조류에 따라 급물살을 이루는 명량해협에서 바라보는 가을은 보는 사람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기에 충분하다.

가을이 되면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마주치는 점이지대에 위치한 고천암은 갈대와 어우러져 가창오리군무가 서서히 시작된다. 서해와 남해의 물이 만나 하나를 이루고 시작을 알리는 땅끝에서 보는 일출과 낙조는 해남의 가을을 더욱 아름답게 다듬는다.

그래서 해남의 가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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