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금 (사)가정을건강하게하는 시민의모임 이사장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력은 결국 우리의 전통명절인 추석도 특별하게 만들었다. 정부와 방역 당국도 이번 추석엔 고향 방문을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미 고령이 되신 어르신들은 1년에 겨우 한두 번 명절에나 고향을 찾는 자식과 손주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번엔 그조차 어렵게 되었다.

인터넷이나 핸드폰으로 성묘도 하고 제사도 지내라고 하니, 시골에 사시는 노인들에게 이번 추석은 매우 썰렁하고 쓸쓸한 명절이 될 것이 틀림없다.

추석은 농경사회의 명절이다. 봄부터 가을이 되도록 땀 흘려 거둔 햇곡식과 햇과일들을 풍성하게 차려놓고,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조상에게 예를 올리고, 강강술래와 같은 흥겨운 추석놀이를 함께 즐겼다. 둥근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기도 했다.

직장이나 학업을 위해 멀리 도회지나 타향으로 나간 사람들이 고향의 부모님을 뵙고, 흩어져 살고 있는 일가 친척들을 만나 서로 안부를 물을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명절이 되면 텔레비전에서 귀성 전쟁을 보여주느라 호들갑이었고, 가부장제의 명절 풍습이 가져온 명절 증후군은 여성계의 주요 이슈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 마을에서는 외지의 자녀들이 찾아와서 명절을 지내는 집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빈집이나 헐린 집터가 절반 가까이 되고, 고향을 지키고 있던 노인들도 자녀를 따라 떠나거나 요양 시설로 거처를 옮기고 있다. 이미 농촌에는 고향 방문을 자제하라고 하지 않아도 찾아올 사람이 없다.

랜선(인터넷 선) 명절이라니. 올 추석은 귀성 전쟁이나 명절 증후군도 없을 것 같다.

원래 명절 증후군은 시댁에 가서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차려내고, 치우는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며느리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을 이르는 말이다.

명절 동안 며느리들에게 집중되는 너무 센 노동 강도와 정서적인 문제가 명절 증후군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며느리들이 고된 일을 하는 동안 남자들은 텔레비전을 보거나 쉬는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명절 문화, 남편의 집을 중심으로 명절 행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명절 증후군의 배경이었다.

결혼 후 핵가족으로 도시에 떨어져 살다가 딸을 기다리는 친정이 아닌 풍속과 지위가 다른 시집에서 이질감을 갖는 며느리의 고충 등은 배려하지 않는다.

물론 명절 증후군은 며느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명절을 쇠러 집에 오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녀를 위해 명절 음식을 미리 장만하고 하나라도 더 싸서 보내기 위해 허리가 휘는 시어머니들의 고충과 스트레스도 외면할 수 없다.

어느 문화건 명절이 있고,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먹고 노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더욱이 개인화 추세가 강화되고 있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가족과 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하고 서로의 체온으로 외로움을 녹여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명절은 매우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노인들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조차 고립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어도 달라지지 않으리라고 한다.

정보사회 이후 명절 문화가 어떻게 달라질지 단언할 수 없지만 서로 체온을 나누던 떠들썩한 명절 문화나 가부장적인 명절 문화는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 새로운 명절 문화가 만들어진다면, 가부장, 남성 가계 중심의 명절에서 남녀 평등한 명절로, 여성에게 일이 집중되는 명절에서 어른, 아이, 남녀 구분 없이 함께 준비하고 함께 즐기고, 함께 쉴 수 있는 명절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명절임에도 누군가와 함께 하지 못하고, 따뜻한 쉴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마음 쓰는 명절문화가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명절 증후군으로 몸과 마음이 고통 받는 사람이 없는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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