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두(문학평론가·시인)

 
 

간격과 간격 사이를 촘촘하게 바라본다. 어려운 사람을 만날 때면 측은지심이 일어난다. 땅끝순례문학관에도 여름이 물러가고, 소슬한 바람과 함께 가을이 왔다.

순박한 사람들과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자신보다는 타인을 더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백련재 문학의 집 작가를 찾아준 독자에게 소홀함은 없었는지 모르겠다.

아버님을 떠나보내고 귀농을 선택했다. 황산고 1회로 공부는 못했지만 졸업식 때는 선행상과 새마을상을, 30년 공직에서는 모범공무원상을 받았다.

착하게 살려했던 기억이 난다. 유배지문학의 심장 같은 해남은 강진·장흥·완도·진도·목포·영암군이 근접해 있다. 해남 면적은 넓고 산자수명(山紫水明)하다. 땅끝 향수는 맛의 진미와 함께 숨과 쉼을 선물 받은 인문학의 고장이다. 투박한 사투리는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한발자국 다가서면 정감에 사람냄새가 난다.

우수영에서는 노을 바람과 사는 윤씨를 만났고, 땅끝에서는 세상을 만났다. 귀촌은 아호를 따서 인송토문재(仁松吐文齋)이거나, 소박한 공간의 집을 상상해본다. 서툰 초행길을 자신의 일처럼 마음써준 김경윤 시인(詩人)도 만났다. 장마와 태풍이 밤새 거리를 휩쓸고 삶의 터전을 할퀴었다. 농부들의 근심으로 책장도, 글도 멈췄다.

백련재를 관리하는 이남인, 최재숙 선생님의 수고로움도 감사하다. 화원면사무소를 찾은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삼십대 초반의 공무원은 자신의 업무를 처리하다 말고, 정중하고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섬세하고, 궁금하지 않게 가족처럼 챙겨주었다. 어쩌면 우리는 성찰하고, 친절하기위해서 사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로 인해 사람과 사람의 간격이 멀어지고 있다. 이순희 시인은 "마스크 쓰라는 것은 말을 삼가라는 것이고, 거리두기란 자연과 더 교감하면서 홀로 사색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는 것이고, 손 씻기는 더러운 곳에 손을 담지 말라는 것"같다고 말했다.

무궁화 열차에서 창밖을 응시하며 앉아있는 한 소녀의 맑은 눈을 보고 부제를 단 시산책집 '착한 사람을 보면 눈물이 난다'를 출간했었다. 경제는 바닥을 치고, 세상은 무당처럼 시끄럽고, 인문학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몸을 낮출 생각이 없고, 정치인은 세금으로 선심을 쓴다.

종교는 흔들리고, 교육은 붕괴된 지 오래다. 인문학 궁극은 자기성찰이고, 그것은 눈부신 어둠을 침착하게 들여다보는 촉수를 가진 자의 것이다. 침묵과 어둠 속으로 들어가 자기 뿌리를 돌보는 시간, 그 시간들로 거듭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복지는 사람들에게 희망이고 권리지만 현실과 상황에 부합한 단계적인 복지를 생각할 때다. 이러다 굶어죽는 때가 오는지 기우(杞憂)이면 좋겠다.

신종 바이러스 균은 끝나지 않을 전쟁으로 시작됐다. 핵보다 무서운 건 미생물에 대한 대비다. 사람의 벽이 두껍다 못해 사납다. 황폐한 동굴 같은 어둠이 내려앉지만 해남은 착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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