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희(주부)

 
 

여태, 침묵이 금인 양 살아와서 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들었다.

해남의 대표적인 관광지 초입에, 새로운 메뉴를 출시했다는 어느 식당의 현수막이 걸려 있어서 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방문자 기록지에 이름을 적고 둘러보니 먼저 와 있던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현수막의 그 메뉴를 주문해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네댓 명이 식사를 하고 있는 앞 테이블에서 광화문 집회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신경이 온통 '광화문 집회에 다녀왔다는 저 사람이 코로나 검진을 받았을까?'로 쏠려 음식이 나왔지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계산대 근처에서 마주친 그 사람은 마스크도 쓰고 있지 않았다. '코로나 검진은 받았느냐고, 마스크는 반드시 착용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쓰고 있던 마스크만 더 단단히 단속하며 나왔다. 돌아오는 길 내내 아무 말도 못한 내가 너무 한심하게 여겨졌다.

의사들이 환자를 볼모로 파업이라는 갑질을 할 때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분노했지만 그것을 표현하지 않았다. 위계(?) 관계가 있는 모임에서 성희롱 급의 농담이 동료에게 날아올 때, '그만하시죠. 빨간불입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정쟁만 일삼고 세비만 축내는 일상을 뉴스에서 날마다 보이는 의원님(?)들에게 분노하고 그런 사람들을 대표로 뽑은 유권자인 내 스스로가 한심해도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살았다. 그렇게 상당히 자주 침묵이 금인 양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목소리를 내고, 가만히 있지 말고, 행동해야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알려준 기사를 읽었다. 아주 작은 일이었는데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폐건전지와 형광등과 종이팩의 수거를 늘리기 위해서 군 환경교통과에서 실시하는 '재활용품을 생활용품으로 교환해드려요~!!'에 우리 아파트는 작년부터 참여해오고 있다.

종이팩을 수거해보면 생산업체와 음료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특히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음료에는 빨대가 붙어있다. 어떤 것은 떼어져 있지만 그대로 붙어있는 것들이 더 많다. 그런 것은 일일이 떼어내 빨대는 플라스틱 그물로, 빨대를 싸고 있는 비닐은 비닐을 모으는 수거봉투에 따로 넣어야 하는데 여간 번거롭지 않다.

그래서 죄스럽지만 그냥 종량제봉투로 직행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방법을 모색해 보지만 그 작은 행위가 어떤 변화를 만들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결국 실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인터넷을 뒤적이다 이런 빨대들을 모아 편지와 함께 기업에 되돌려 보내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어떤 이가 기업으로부터 개선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는 기사를 봤다. 누군가가 기획하고 누군가는 실행하면서 그런 누군가들이 그렇게 세상을 바꿔가고 있어서 기뻐서 또 읽고, 침묵을 금인 양 살아온 삶이 부끄러워서 또 읽었다. 부조리하고 부당한 일에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그러한 것과 같은 편이 되는 것이다. 아무 소리를 내지 않으면 인정하는 것이다. 여태 침묵이 금인 양 살아온 내 삶을 반성하며 일인 시위를 하러 가고 있다.

해남군의회에서 얼마 전 아주 저질의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에 창피하고 부끄러웠고 화가 났다. 선거로 뽑은 군 의원의 유권자는 바로 나니까. 그래서 '저질 군 의회는 저질 군 의원을 뽑은 내 잘못이다-해남군민'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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