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언택트(비대면) 추석 연휴'가 다가오고 있다. 이번 추석을 앞두고 '귀성(역귀성)을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이 깊어진다. 명절이 다가오면 여러 사정으로 으레 한 번쯤 해보는 고민거리지만, 코로나19라는 역병이 온 나라를 덮친 2020년 추석에는 여느 명절보다 그 무게가 더하다. 가면 불효, 안 가면 효도가 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통로가 되는 '대이동'을 감안하면 이번만큼은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데 모두가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한다. 근데 '잠시 멈춤'의 당위성을 이해하는 방향대로 행동도 따라주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감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래의 3대 명절이라면 설, 단오, 추석이 꼽힌다. 단오는 명절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퇴색되어 가지만, 설과 추석에는 차례와 성묘를 지내기 위한 민족 대이동의 연례행사가 펼쳐진다. 이 중 추석은 명실공히 최대의 명절이다. 결실의 풍요가 넘쳐난다. 그래서 예부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생겨났다. 추석은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돈독한 정을 느끼도록 멍석을 깔아준다. 부모를 찾아뵙고, 친지 안부도 확인한다. 차례와 성묘를 지내며 조상에게 감사의 인사도 올린다.

코로나19는 그간 이어져 내려온 이런 전통과 풍속을 일단 멈추도록 강요한다. 해남군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오지 말고, 가지도 말자'며 방문 자제를 호소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서한문도 발송한다. 이번 추석만큼은 고향 방문을 하지 않아도 불효가 아니라고 홍보에 나선다. 부모가 자녀를 찾아가는 역귀성도 하지말자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황산에 위치한 남도광역추모공원은 오는 21일부터 25일까지 신청을 받아 온라인 성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코로나 확산의 불씨가 될 것을 우려해 이동 제한조치마저 만지작거리고 있다.

상황의 엄중함이 이쯤 되면 이해하는데 그칠 게 아니라, 판단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게 상책(上策)이다. 해남은 전남에서 몇 안 되는 '코로나19 청정지역'을 줄곧 유지하고 있다. 이번 추석 연휴는 청정의 길을 계속 걷느냐, 멈추느냐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코로나19가 무서운 건 조용한 전파에 있다. 자신이 감염된 지도 모르는 무증상 환자가 널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주간의 자가 격리조치가 필요하다. 해남의 경우처럼 농촌지역에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인구 분포의 주류를 이룬다. 감염병에 더 취약할 뿐더러 치명적이다.

그래서 이번 추석만큼은 어른들이 자녀들에게 내려오지 말라고 '단호하게' 주문해야 한다. 자녀가 먼저 못 내려간다는 말을 하기란 쉽지 않다. 자녀들의 마음 한 편엔 내려가도 설렘보다 찜찜, 내려가지 않아도 찜찜함이 자리잡고 있다. 부모가 먼저 자녀의 고민과 찜찜함을 덜어주는 것도 사랑이다. 부모와 자식간에 가장 바라는 것은 건강이다. 건강을 담보하면서까지 귀성과 역귀성을 강행한다는 것은 무리수를 두는 것과 같다. 조선시대에도 역병이나 재해가 있으면 차례를 생략했다고 한다.

이 참에 공동체의 의미도 되새겨보자. 나 하나가 모여 천, 만이 된다. '만에 하나', 즉 0.01%의 확률이 만이 모이면 100%가 된다.

추석에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지 못하게 돼 아쉽기 그지없지만, 가족 모두의 건강이 최대의 덕목이다. 자녀의 입장에서는 부모의 건강을 위한 것이 가장 큰 효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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