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성(공연 프로듀서)

 
 

나는 요즘 내 고향 땅끝 해남을 자주 찾아간다.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거나 중단되는 일이 잦아서 그런지, 허탈한 마음이 들면 뭔가 고향에서 위로를 얻고 싶은 가 보다. 해남에서의 쉼은 내게 많은 위로와 안식을 주었지만 동시에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왜 연극을 하는가? 앞으로도 해야하는가? 그렇다면 이제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어디에서 누구랑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 나에게 던졌던 수많은 질문들 중에 몇 가지는 더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재미와 감동을 나눌 수 있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는 없는지, 특히 사라져가는 풍경들을 지켜내면서 대중도 공감할만한 콘텐츠는 없는지,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함께 할 수 있는 뜻밖의 장소는 없는지, 이런 질문들에 답을 얻기 위해 지금도 고향땅 곳곳을 돌아보며 헤매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결국 미래 연극쟁이로 내가 살아남을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고향땅에서 가장 찾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문화콘텐츠의 혁신적인 보물창고이다. 나만의 이야기를 찾아야 하는 간절함도 있지만, 그 이야기를 대중들과 소통할 미래의 장소가 절실히 필요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가슴 속에 품은 소박한 미래의 꿈을 한 조각 꺼내 볼 수 있는 시작의 장소, 기존 문화예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상상력으로 그 틀을 깨버리는 새로운 마당을 찾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나눌 장소가 꼭 잘 꾸며진 극장이어야만 하는가? 일찍부터 이런 상상력을 동원했던 나라들이 있다. 적극적으로 탈장소화를 시도해 성공한 해외의 몇 가지 사례들을 얘기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브레겐츠 페스티벌'이다. 이 페스티벌은 세계 최대의 수상무대(floating Stage)에서 일주일간 공연되는 유일무이한 수상 오페라축제이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브레겐츠는 오스트리아 북쪽의 작은 도시로 독일의 뮌헨을 통해서 3시간은 족히 기차를 타고 들어가야 할 만큼 접근성이 좋지 않다. 이런 첩첩산중의 호숫가에서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축제가 열리는 7~8월 기간에는 인구의 10배 정도되는 약 30만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대표 페스티벌이 되었다. 이렇게 첩첩산중에서 펼쳐지는 페스티벌 중에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다. 우리 밀양연극촌의 밀양연극제와 닮은, 일본 도야마현에 위치한 '도가 연극촌'의 국제연극제이다. 해발 800m 산동네에서 세계 16개국 30팀이 모여 펼치는 국제 연극제인데,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가 관의 지원을 받아 주민 400명의 촌락에 연극촌을 꾸리면서 시작되었다. 민관이 연극뿐 아니라 지역 살리기에 함께 나서 현재의 세계적인 연극 페스티벌을 탄생시켰다. 마지막으로 일년 내내 공연예술이 끊이지 않는 에든버러 축제가 있다. 에든버러 축제의 출발도 사실은 미미했다. 무명의 단체들이 무허가로 공터에서 공연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에든버러는 인구가 서울의 10분의 1도 안 되는 45만의 작은 도시지만, 이제는 현대음악, 오페라, 연극 등을 즐기기 위해 수백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대표적인 공연예술의 도시가 되었다.

워낙 작은 도시라 많은 관객들과 예술가들을 수용할만한 공연 장소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에든버러의 민·관이 지혜를 짜낸 것이 신의 한 수였다. 극장이 아닌 도서관 같은 공공시설이나 길거리에서도 수많은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세계 최고의 공연페스티벌로 거듭난 것이다.

이런 사례들을 살펴 보다보니 내 고향 해남도 세계적인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조건들이 이미 갖춰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 꿈을 현실로 실현시켜 보기 위해 많은 상상을 해본다.

나처럼 천생 연극쟁이들은 멋진 장소를 보면 그곳이 곧 극장으로 보이고, 무대로 보이는 것 같다. 해창 주조장의 100년 묵은 창고가 화려한 극장처럼 보이는가 하면 100년이 지난 유선관 앞마당이 놀이마당으로 보이고, 미황사의 절경이 무대장치로 보이기도 한다. 어떤 공간이라도 캔버스가 되고 놀이마당이 되고, 어떤 이야기라도 작품이 될 수 있는 그런 파격적인 곳을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간을 허무는 것이 바로 상상의 힘이니까.

<다음 회차에 하편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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