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신천지 대구교회를 거점으로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속히 확산되자 발표된 지 70년이 넘은 한 소설이 주목 받았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의 '페스트'(1947년 발간)는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중소도시를 무대로 1년간 창궐한 전염병과의 사투를 다룬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이 화제가 된 이유는 전염병 이야기가 지금의 코로나19와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페스트가 도시에 퍼지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기심, 현실 도피, 공포, 절망, 저항과 전염 경로 등이 시공(時空)을 떠나 아주 흡사하다. 자원봉사대는 일선에서 코로나19와 맞서 싸우는 우리의 의료진과 닮았다. 소설에서 전염병을 견디고 이겨낸 주체는 어느 한 영웅이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라고 결론 내린다.

우리는 공동체 정신으로 똘똘 뭉쳤던 경험을 갖고 있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로 경제위기가 닥치자 외채를 갚기 위한 금 모으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당시 4개월간 351만명이 동참해 226톤 정도의 금이 모아졌다(물론 금 모으기에 동참한 사람에게는 실제 금값보다 약간 많은 금액을 통장에 입금했다). 모아진 대부분 금을 수출한 덕분에 22억 달러의 외화를 변통했다. 무형의 두 가지 성과도 거뒀다. 공동체 의식이 높아지고, 국제 신용도를 얻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1, 2차 확산은 우리에게 공동체가 무엇인가에 대해 물음표를 던져준다. 1차 유행의 주범으로 신천지 교회가 지목되더니, 2차 유행 때는 전광훈 목사(목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와 사랑제일교회가 갖은 일탈 행위를 일삼아 '공공의 적'으로 지탄받고 있다. 국민들을 열불 나게 하는 데는 전광훈과 그를 추종하는 신도들이 하나같이 집단이기주의로 뭉쳐진 반사회적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8·15 광화문집회 참가자를 태운 운송버스 인솔책임자의 상당수가 정통 교단 소속의 목회자이다. 많은 교단은 코로나 확산 예방을 위한 대면 예배금지마저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주변의 다른 사람, 아니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행위마저 종교의 자유에 포함시킬 수는 없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도록 만드는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상황이 이어진다. 이런 배타적이고도 이기적인 행태에서 공동체 정신을 조금이나마 기대할 수 있을까.

거짓말로 방역에 혼선을 준 광주의 확진자들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유흥업소 출입을 숨긴 DJ센터 간부와 40대 주부, 광화문 집회 대신 나주 골드스파에 다녀왔다고 둘러댄 교회 신도 등등. 일어탁수(一魚濁水·물고기 한 마리가 큰 물을 흐리게 한다는 뜻)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엊그제 부산 샘터교회 안중덕 목사의 페이스북 메시지가 문재인 대통령이 SNS에 공유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것은 잠잠하라는 뜻, 사람과 거리를 두라는 것은 자연을 가까이하라는 뜻, 대면 예배를 하지 말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뜻 등의 내용이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산상수훈(山上垂訓)의 일부를 꺼내본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밖에 버려져 다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태복음 5:13~14) 세속에 녹아있는 교회, 목회자가 더 이상 예수님을 욕되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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