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숙(해남고 교사)

 
 

2018년 출산과 2019년 육아휴직을 끝내고 2020년 복직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코로나19가 발병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나의 생존과 교사로서의 생존이 시작됐다. 2월부터 일단 내가 살아남아야 했다. TV와 SNS 소식을 들으며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한 외출 외에는 현관을 나서지 않았다. 웬만한 질병은 비상약으로 버텼다.

그러다 3월이 되었다. 휴업으로 인해 학생들은 등교를 하지 않지만 교사들은 출근해야 했다. '교사들은 코로나가 피해가나?'라는 불만을 가지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수업을 하라는 공문이 왔다. 달리기 선수에게 수영시합에 나가라는 말처럼 온라인 수업이라는 낯선 단어가 공포로 다가왔다. '어떻게 하라는 거지?' 책상 앞에 앉아 한숨만 내쉬었다. 교과서를 넘기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동안 나의 수업을 어떻게 해왔는지 생각해봤다. 학생들에게 계속된 질문을 던지며 인간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가져와서 적절함과 지나침, 그 중간 어디쯤 있는 중용을 찾는 윤리수업이었다. 온라인으로 절대 대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4월 9일 온라인 개학날이 점점 다가왔다. 최신의 기기들을 다룰 수 있는 기술도, 온라인 수업으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술도 생겨나지 않았다. 온라인 수업과 나중에 등교한 후 이어지게 될 수업까지 어떻게 수업의 정체성이 혼란스럽지 않게 할 수 있을지 내가 혼란스러웠다.

일단 학교에서 안내해주는 대로 구글클래스룸을 열었다. 출석체크를 하고, 과제를 올리고, 과제 수행여부를 체크했다. 100명이 넘는 학생들을 거의 매일 피드백 달아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몇몇 학생들에게만 댓글을 달아주었다.

2주 정도 지나자 쌍방향수업이 가능한 기술을 갖춘 선생님에게 여유가 생겨, 나도 줌(ZOOM)으로 수업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을 시작하고, 출석체크를 하고 나면 하나둘 화면을 끄고, 내 목소리를 듣기만 했다. 끝까지 얼굴을 보여주며, 단답형의 대답을 해주는 몇몇 학생들이 있었다. 잘 부르지는 못해도 내 노래를 끝까지 들어주던 노래방에 함께 있던 친구처럼 친근한 학생들이 생겨났다. 간간이 내 수업을 녹음해서 파일을 올려주기도 했다.

그리고는 5월이 되자 등교수업이 시작됐다. 수능을 앞둔 고3학생들에게 3,4월의 수업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듯 느껴졌다. 미친 듯 수능범위 진도를 맞추기 위해 강의 후 문제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왔다. 아직도 할 일이 산더미 같다. 성적처리와 함께 생활기록부에 학생의 1학기 모습과 성장을 기록해주어야 한다.

우리는 코로나 아래에서 얼마나 성장했을까? 교사로서는 성장보다는 생존이 지배했던 1학기였다. 그러나 수업시간에 학생들의 질문 하나, 또 이어지는 질문으로 눈빛이 이동하며 조명이 켜지는 교실이 얼마나 소중한 장(場)인지 느끼게 되었다.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에 뛰어난 생존력으로 성장하신 선생님들도 계신다. 근데 나는 윤리교사로서 어떻게 성장해야할지 아직 모르겠다. 온라인보다 교실이라는 장을 나는 떠나질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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