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해남교육참여위원장)

 
 

고등학교에서 체육시간이 없어졌다. 아니 없어진 건 아니고 오히려 주당 체육수업시간은 더 늘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늘었어도 학생들은 체육시간이 시험에 지친 머리를 쉬는 시간으로 생각하며 출석점수나 채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여 태반의 학생은 딴 짓이다. 아무 의욕도 보이지 않는 학생들 앞에서 체육교사들도 당황해 한다.

2교시 체육시간에 열심히 뛰고 나면 3교시 수학시간에 잠자게 되니 엄마가 그러지 말랬단다.

그러다가 기말고사 시험철이 다가오면 체육과목 내신성적이라도 좋게 따려고 수행평가점수를 위해 잠깐 기술적 노력을 흉내 내는 정도다.

과거시험을 앞에 두고 공부에 일생을 거는 선비들도 말타기, 활쏘기 등 체력단련이나, 무예수련을 통해 용기와 절제력을 키워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무예만이 아니라 그림, 시, 거문고 등 예술적 감수성 없이는 사람 되기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무겸전의 선비를 최고로 여기는 풍조가 있었다. 동서고금의 어느 교육학에나 지덕체의 연마와 균형은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이제 예체능 교과목이 설 자리는 없어졌다. 음악이나 미술을 배우는 시간도 옛날보다 줄었다. 학생들 관심도 많이 떨어졌다.

땀 흘려 뛰어놀며 몰입해보는 시간, 어떤 자신의 한계를 돌파해보려는 시간, 등급이나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아무 목적 없는 즐거움에 심취하는 학생들이 없다. 예체능은 대학 입시에 도움되지 못하니까.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불행하다. 전 세계 어떤 청소년보다도. 더 이상 견딜 수 없이 불행하다. 재미있는 것들은 다 막혀 있고 재미없고 힘든 공부노동만 끝없이 계속되는 삶, 이것이 수 십 년 째 전 세계 청소년 자살률 1위를 생산하는 뿌리다. 도시의 먼 곳 이야기만이 아니다. 수년 전 수능시험 날 자살한 고등학생이 해남에서도 있었다. 단지 그걸 내 아이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회와 학부모, 학교가 있을 뿐이다.

교사로 지낸 30여 년을 결산해보면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더 좋은 대학을 가라는 다그침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교육당국도 학부모도, 나중에는 학생이 스스로 '진도 나갑시다!'고 외치는 교실에 교사도 교육도 설 자리는 없다. 학생들에게 훈화도, 어떤 교육적 이야기도, 미적 감수성을 키워줄 음악 미술 시간도, 절제와 용기를 키워줄 수 있는 체육시간도 없어진 거다. 누가 없앴나?

교사가? "교사는 시키는 대로 안 하믄 짤리는데 교사들이 먼 힘이 있다고…."

교육당국이? "교육 당국은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에 굴복할 건데 정치인이 표가 안 될 일을 하라고 하겠어."

학부모가? "먹고 살 일이 중한데 졸업하고 직장 잡을라믄 좋은 대학이 다 결정하는 건데 그럼 좋은 대학 보내는 데 집중해야지 그걸 왜 내 책임이라고 해. 사회 탓이지."

그럼 사회는 누가 만든건데????

맞다, 사회 탓이다.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 입시제도만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입시제도는 어떻게 바꾸어도 그 빈틈을 먼저 차지하려는 마음들이 남아있는 한 바꾸어봐야 새로운 문제가 나타날 뿐이다.

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볼록하게 솟아오르는 풍선효과가 생기기 마련이다. 사회를 바꾸는 일은 그 사회의 성원 자신의 몸과 마음과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그 힘으로 교육을 억누르는 각종의 제도들도 함께 바꾸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 몸은 바꿀 생각 하나도 없이 제도 탓만 해서는 사회는 안 바뀐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도 안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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