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안정감과 낭만의 요소이면서 칙칙함과 우울함도 던져주는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비를 소재로 한 대중가요나 문학작품은 애수를 자극하고, 결말도 대개 비극으로 끝난다.

비를 소재로 한 노래는 수 천곡에 이른다. 심금을 울리는 데 그만인 까닭이다.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사랑이란 이런가요/비 내리는 호남선에/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1956년 발표된 '비 내리는 호남선'(노래 손인호)은 그 해 호남선(대전~목포) 열차에서 타계한 신익희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추모곡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손로원(작사)과 박춘석(작곡)이 큰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이 노래는 대박을 터뜨렸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로 시작되는 '남행열차'(노래 김수희)가 1984년 바통을 이어받았다. 남행열차는 '목포의 눈물'과 함께 기아타이거즈의 대표 응원가이기도 하다. 두 곡 모두 비를 앞세워 애달픈 이별을 노래했다.

소설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비도 이별과 비극을 암시한다.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레전드(Legend·전설)라고 할 수 있는 황순원의 '소나기'. 사춘기를 맞은 시골 소년과 서울 소녀의 청순한 사랑을 소나기와 개울을 매개로 엮어낸다.

1952년 발표된 소나기는 1960년부터 현재까지 60년간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줄곧 실리면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순수한 사랑'의 표상으로 남아있다.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1924년 발표)도 비 오는 날을 배경으로 한다. 인력거꾼인 김첨지는 비 때문에 손님이 많아 오랜만에 두둑한 수입을 올린다. 덕분에 아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하던 설렁탕을 사들고 귀가했으나 아내는 이미 죽어있더라는 애잔한 내용이다.

올해 장마는 유난히 길고, 집중호우가 큰 상처를 남겼다. '농사가 만사'인 우리 조상에게 장마는 지긋지긋하게 다가왔을 터이다. 속담이 이를 잘 말해준다.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 '삼 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장마와 홍수 피해가 가뭄보다 훨씬 크다는 것)

장마는 '오래 동안 붙어있는 마귀'(長魔)라고 하기도 하지만, 한자어 장(長)과 물의 옛말인 '맣'이 합쳐져 오랜 기간 계속되는 비를 뜻한다. '괴로운 비'란 의미의 고우(苦雨)라고 하기도 한다.

'장마철'하면 생각나는 걸 묻는 설문에 젊은 층은 '또 비?'라고 답한 반면, 나이 지긋한 분들은 '빈대떡'을 꼽았다고 한다. 옛적 장마철에 농사일을 쉬면서 집에서 부침개를 먹던 추억이 되살아난 때문일 것이다. 근데 붕어 없는 붕어빵처럼 빈대가 없는 데 왜 빈대떡이라고 했을까. 여기에는 여러 설(說)이 있다. 서울 어느 한 구석에 빈대가 많아 '빈대골'이라고 불렸는데, 이 곳엔 녹두전 가게가 많아서 유래됐다는 것. 한편에서는 가난한 서민의 떡, 즉 '빈자(貧者)떡'이 바뀌었다는 설이다. 1940년 후반에 발표된 노래 '빈대떡 신사' 가사 중 '돈 없으면 대폿집에서(이후에 '집에 가서'로 개사)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는 내용을 보면 후자의 추론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집중호우를 동반한 기나긴 장마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다. 해남지역은 다행히 올해 수해를 덜 입었다. 하지만 연례행사로 자리 잡을 긴 장마와 물 폭탄에 '지나칠 정도로' 대비하는 것은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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