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성(공연 프로듀서)

 
 

해남에는 두륜산이 품고 있는 천년 고찰 대흥사가 있다. 아름다운 자연으로 둘러싸인 대흥사의 황홀한 풍경은 늘 먼 길을 달려온 내게 고단함을 잠시 잊고 행복한 마음을 들게 해주곤 한다.

주차장에 내려 대흥사로 올라가다 보면 계곡을 건널 즈음, 다리 입구에 한옥 여관인 유선관이 자리 잡고 있다. 유선관은 누구나 한번쯤은 머물고 싶은 곳이다.

예전엔 대흥사를 찾는 신도나 수도승들이 객사(실)로 사용했다고 한다. 단정하게 잘 정돈된 정원 뒤로 사시사철 청량한 계곡물이 흐른다. 그 풍경이 너무 좋아 대흥사에 갈 때면 꼭 들렀다 가곤 했다.

그런 유선관이 벌써 100년이 되었다고 하니 깜짝 놀랐다. 그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의 여백을 찾고 지친 영혼과 마음을 치유했을까. 모든 것들이 쉽게 사라지는 지금, 다행히 뜻있는 어느 분이 유선관을 지금 시대에 걸맞는 편안한 공간으로 새 단장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우리 민족의 혼과 함께 해온 100년 역사의 한옥 유선관은 해남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창의적인 문화 콘텐츠가 꿈틀거리는 예향의 고장답게 유선관 역시 전통문화예술의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유선관은 실제로도 예술가들과 인연이 깊다. 특히 한국 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만큼 이곳에 많은 추억과 애정을 갖고 계신 분도 없을 것이다. 당신의 작품엔 유선관이 많이 등장한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장군의 아들', '서편제',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안겨준 '취화선'까지 한국의 멋과 흥을 세계에 알린 영화들이 바로 이곳 유선관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다. 화면 속 유선관은 한옥이 가진 기품과 멋스러움, 더 나아가 한국적인 미(美)를 세계인들에게 각인시켜주었다.

임권택 감독에게 유선관의 추억을 여쭈었다. 당신은 영화를 촬영할 때뿐만 아니라 작품을 구상할 때도 이곳을 편안한 휴식처로 삼아 줄곧 머무셨다고 한다. 이곳에 머물면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이 기상천외하게 튀어 나오곤 했다는 것이다.

유선관이 나온 영화나 여기서 구상한 영화들이 모두 대박이 났는데 어쩌면 이곳에 흐르는 두륜산의 정기와 대흥사 부처님의 가피 덕분이 아닐까 생각하신단다.

한 가지 에피소드도 덧붙였다. 유선관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는데, 장소를 헌팅할 때나 촬영을 나갈 때면 항상 졸졸 따라 다녔다고 한다. 일정이 끝나고 돌아올 때면 앞장서서 유선관까지 안내하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그 영리한 강아지가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며 웃었다.

이렇듯 다양한 작품들의 주무대가 되어온 유선관이 이제 새로운 백년을 앞두고 있다.

나는 유선관이 지역문화를 뛰어넘어 우리나라 전통문화예술의 중심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작은 야외 원형극장을 만들어 장인들의 맥을 이어온 '명인열전', '명무전' 등 해남을 아우르는 대표적인 문화콘텐츠가 다양하게 펼쳐지면 어떨까 싶다. 더 크게는 콘텐츠의 보물창고인 해남, 강진, 진도, 완도 등 남도의 문화예술을 아우르는 '불교전통문화축전'이나 '남도소리축전' 등과 같은 축제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지친 요즘,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가 아닌 국내 관광지들을 재발견하고 있다. 백년 여관 유선관의 가치를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어질 새로운 100년, 유선관 뿐만 아니라 해남군 전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문화예술과 풍류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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