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농부)

 
 

벌써 7개월째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남긴 많은 것 중 하나는 온 세상이 글로벌화 되어, 인류가 한 몸뚱이로 묶어져 있고, 선진국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후진국들보다 더 치명적인 현상을 많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미국을 보라. 공공의료시설이 거의 폐허가 된 사회의 고통이 코로나바이러스 앞에서 얼마나 끔찍한지. 모두가 공포로 느낄 만큼 코로나바이러스 공격이 거세지는 이 순간에도 권력자들은 반성은커녕 인종차별과 편견에 쌓여서 자기 정당화에만 집착하고, 자기 보호를 위한 권력 잡기에만 매달려 있다. 믿음이 가는 선진국이 없다.

왜 그럴까.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자본의 성장, 부의 축적을 향한 집요한 탐욕의 이념으로 등장한 신자유주의, 그 선진국들의 제일 철학이 이제야 가면을 벗은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새삼 생각해보게 만든다. 인간을 노예로 삼아도 자기의 부가 축적되면 그만인, 과거 식민지 시대의 비인간적 행동이 교묘한 왜곡의 과정을 거쳐서 현대에 다시 등장한, 무한경쟁의 시장 자유, 그 시장의 출발선이 일방적이어도 재산만 알아서 모으면 된다는 극단적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 여러 번 적폐의 대상이 되고도 살아남은, 자기들 시장만 좋으면 만사가 좋다는 식의 신자유주의, 어찌 보면 지구가 망가져도 나만, 우리 가족만 잘되면 관심 없다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코로나19 재앙을 더 키우고 있다.

신자유주의, 그것은 빈부의 격차를 그 사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적인 넓이로 벌렸고, 사회 공적 부분에 대한 공공재의 투자는 좌파적 포퓰리즘이라며 외면하거나 있는 것도 세금 낭비라며 없앴던 정책으로 아직도 전 세계에 군림하고 있다. 이것의 후유증이 이제야 적나라하게 전염병을 빌어서 그 가면을 벗고 있다. 항상 독식이 보장된 민주적 선거제도의 결과로 위장되어 미국의 트럼프 같은 사생아도 낳았다.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미국 제일주의, 한마디로 '누구와 함께라면 피곤해'이다. 나 혼자 다 먹겠다는 파쇼에 가까운 정치가 가능한 사회적 분위기는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의 광기이다.

경제만 부강하면 선진국인가. 문화가, 특히 사회 전반에 흐르는 구성원의 철학이 건강해야 한다. 그 경제력이 우수하다고 해도 자기들 위주의 실존만 우수한 나라는 건강한 것이 아니다. 가장 인간적인 철학이라는 실존철학이 태동했어도 자기들만의 실존이 아닌 인종차별 없는 실존을 말하지 않는 한 헛소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툭하면 선진국, 미국 하며 자기비하에 시달렸던 한국, 스스로도 몰라볼 지경으로 컸다. 그것이 바로 한국이 가고 있는 민주주의의 길이며 공동체의 길이다. 지금은 K-방역이라고 하지만 훗날 K-민주주의라 부를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종식과 공존을 향한, 자본의 복지가 아닌, 인간의 복지를 강화하는 진보적 시스템을 기본 질서로 하는 그 '민주주의'가 건강해지면, 우리의 삶이 자연히 건강해진다. 식민지를 거치면서 늘 저자세를 덕목으로 하는, 그러면서 가진 자를 위하여 자신들을 부정적으로 자학하는 습관을 버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겸손한 자신감'을 갖는, 건강한 사회 연대가 살아 움직이는, 인간을 더 우선시하는 그런 공동체 사회, 한국이 우리 앞에 오고 있다. 이에 기꺼이 동참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하나인 세상에서 공존의 철학이 영글어가는 그곳, 한국에서 말이다. 그것이 정이 넘치는 사회이다. 돈이란 가두어진 금속 통에 있다가도 사라지는 것이지만 부유한 마음은 넉넉한 백자 항아리처럼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전파된다. 인간이 앞선 사회, 홍익인간의 사회가 코로나바이러스를 멋들어지게 이겨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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