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권에서 황제라는 호칭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 사용했다. 여섯 나라(전국시대 칠웅 중 진나라 제외)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기원전 221년 천하통일을 한 그는 자신을 첫 번째 황제라는 뜻의 시황제(始皇帝)로 부르게 한 것이다.

진시황이 죽은 지 100년 정도 흐른 뒤에 편찬된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황제의 어원(語源)을 이렇게 적었다. '신하에게 천하의 지배자를 지칭하는 적당한 명칭을 올리라고 명하자 천황(天皇), 지황(地皇), 태황(泰皇) 중 가장 존귀한 태황이라는 호칭을 바쳤다. 이를 거절하고 태황의 '황'과 신(神)을 뜻하는 '제'를 직접 붙여 황제라고 했다' 진시황은 자신이 삼황과 오제(三皇五帝)를 능가하거나 최소한 버금간다는 의미로 황제라는 칭호를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양권에서 황제의 어원은 '카이사르'(Caesar)이다. 영어권은 엠퍼러(Emperor·라틴어로 개선장군이라는 뜻)를 사용하나, 독일어의 카이저(Kaiser)나 러시아어 차르(Czar)는 모두 카이사르에서 따온 것이다. 황제라는 의미의 카이사르는 성경에도 수차례 나온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질문을 받은 예수의 답변에서)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태복음 22장 21절) 누가복음, 마가복음, 사도행전에도 나오는 '가이사'라는 표기는 우리나라 성경이 중국 성경을 번역하면서 한자음을 그대로 썼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고대 로마제국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영어로 줄리어스 시저)를 지칭한다. 지금의 유럽 지형이 2000년 전의 카이사르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그래서 카이사르가 남긴 말이나 글은 여전히 힘이 실려 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루비콘 강을 건너기 직전 부하들에게 한 말),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소아시아 폰토스 왕 파르나케스 2세를 격파한 뒤 원로원에 보낸 전과 보고), '브루투스, 너마저'(기원전 44년, 원로원 회의장에서 단검에 찔려 쓰러지면서)

카이사르가 죽으면서 한 말은 명확하지 않다. 사실이라 하더라도 암살자인 브루투스가 마르쿠스 브루투스(카이사르 애인의 아들)인지, 데키우스 브루투스(카이사르 유언장의 제2 상속인)인지도 모호하다. 둘 다일 수도 있다. 다만,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쓰라림을 표현할 때 지금도 원용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은 그럴 줄 몰랐다는 의미가 '피를 토하는 심정만큼이나' 짙게 배어 있는 말이다.

'배신'은 철석같이 믿은 사람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개념일 수 있다. 카이사르를 죽인 사람들(14명)은 공화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카이사르가 왕(제정)이 되는 것을 암살로써 사전에 저지했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을 두고 세평(世評)이 엇갈린다. 하나는 인권시민운동 개척자의 불명예스러운 결말에 대한 비통함과 애도, 다른 하나는 '겉과 속이 다름으로 나타난' 성추행에 대한 책망과 비난의 화살이다. 잣대의 무게 중심이 어디에 있건, 줄곧 약자의 편에 선 고인에 대한 배신감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박원순, 너마저!'라며.

자살로 생을 마감한 대부분의 유명인에겐 흑역사(없었던 일로 하고 싶은 과거)가 있다. 하지만 자살이 불명예나 억울함의 지우개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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