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상금(전 서울시의원)

 
 

오늘까지 내 삶의 삼각기둥은 고향 사랑과 수치심에 대한 각별한 경계, 그리고 해남신문이다. 고향을 지키는 사람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출향인은 늘 고향이 그립고, 또 그리워하면서 산다. 그리움은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배가 된다.

이는 귀소본능 혹은 수구초심과 같이 태어나 자라던 땅과 바다에 묻히기를 바라는 금수한테서나 사용되는 말이지만 인간 역시 벗어날 수 없는 원초적 본능이다.

나 역시도 고향 생활이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20여 년의 세월에 불과하고 서울에서 산 기간은 두 배가 넘는 세월이지만 아직도 내 삶의 시원(始原)은 늘 고향 해남이다. 지금도 해남 관련 사건이나 사람 이름만 들어도 나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해남 바보가 된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유년 시절의 꿈을 꾸거나 얼핏 추억이라도 스치는 날이면 하루가 행복하다. 눈을 감으면 꼬불꼬불한 골목길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은 경지정리로 달라져 버린 옛날 아버지께서 짓던 논둑길 밭둑길을 아직도 소상히 그릴 수 있다. 또 사춘기 청춘남녀가 어울릴 때면 순정이 깃발처럼 나부끼던 순수의 계절만큼은 내 삶이 마감되는 순간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또 내가 평생 유념한 것 중에 하나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에서 깨달은 수치심에 대한 각별한 경계였다.

누구나 그렇듯이 객지 생활은 서로 인사는 나누고 살지만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뿌리까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아는 것이라고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외모밖에 없어 예전에는 옷이나 구두를 보고 판단했는데, 요즘은 타고 다니는 승용차를 보고 대충 짐작할 뿐이다.

반면에 고향에서는 학력·경력은 물론 부모·형제와 심지어 외가·처가까지 들먹이며 심판한다. 이렇다 보니 설령 돈을 벌어 고급승용차를 타고 고위공직에 올랐다 해도 수치스러운 과거 때문에 비판받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이것이 내가 평소 강조하는 인간 내면의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수치심에 대한 경계의 이유라고 말하고 싶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수치심의 지각이 마비된 감정, 즉 습관적인 삶에서 깨어나게 하고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난 받을 행위를 애당초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살아있는 감정이라고 했다. 요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성범죄는 수치심에 대한 지각이 없거나 부족함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해남신문은 고향을 떠나 사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수요일마다 이런저런 소식을 전하는 해남신문을 읽으면서 고향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해남신문은 국내 수백개의 군 단위 신문 가운데서 충북 옥천, 충남 홍성, 경남 남해신문과 더불어 4대 신문으로 선정될 만큼 역사·재정·운영·편집 등에서 뛰어난 신문임을 잘 알고 있다.

공자는 사람의 나이 30세를 '이립(而立)'이라 부르고 모든 기초를 완성하는 나이라고 했다. 해남신문 창립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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