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상(전 전라남도문화관광재단 사무처장)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평검사와의 대화를 지켜본 국민들 사이에 '검사스럽다'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행동이나 성격이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논리 없이 자기주장만 되풀이한다는 뜻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소속기관인 국립국어원의 사전에 없는 말에도 올랐다고 한다. '스럽다'는 명사 뒤에 붙어 형용사로 바꿔 놓는다. 그 명사의 성질이나 느낌을 표현해 주는 것이다. 심지어 인명이나 지명에도 붙어 일반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쓰이기도 한다.

'해남스럽다'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해남을 부정적인 의미로 얘기하면서 쓰였다. 잃어버린 10년은 노무현, 김대중 정부를 두고 일부 야당이 주장했던 얘기지만 해남도 그렇다.

2년 전 민선 7기가 시작돼 변화를 시도하면서 자연스럽게 지난 세월을 반추하면서 '잃어버린 10년'을 얘기하는 군민들이 늘었다. 그 세월에 해남은 '부정'의 아이콘 그 자체였다.

가정에서 뭣을 한들 예쁜 아이가 있고, 뭣을 한들 미운 어른이 있다. 아이는 긍정이고, 어른은 부정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소환해서 가슴앓이를 할 필요가 없지만 10년 전부터 해남은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하자고 군의원이 나섰고, 화력발전소를 유치하자고 군수가 나서면서 청정해남을 지키기 위해 군민들이 투쟁에 나섰다. 군민과 30년을 함께한 해남신문도 그 중심에 있었다. 결국 아껴놓은 땅 해남을 지켰다.

그 이후 문재인 정부의 탈핵정책과 미세먼지 저감 정책을 보면서 군민들의 선견지명에 찬사를 보낸다. 지금도 반추해보면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당시 해남의 대표적인 축제가 '군수 재보선'이라는 비아냥거림이 안팎으로 있었다. 그 때 해남스러운 군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안고 살았다. 때로는 해명도 하고, 변명도 했지만 그 꼬리표를 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언론에 노출되는 해남상황이 그렇지 못했다. 뭣을 해도 문제가 있는 해남상황 말이다. 두더지 게임처럼 정리하면 튀어나오는 부정적인 일들이 왜 그리 많았는지.

그러던 중 '해남스럽다'라는 말이 부정의 이미지를 떨쳐버리고 긍정의 이미지로 대변신하게 됐다. 이제 해남스러운 땅끝에서 살아가는 자랑스러운 해남군민이 된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민선 7기 전반기 성과만을 부각하고자 꺼내는 말이 아니다. 남사스럽게 '박비어천가' 대신 '명비어천가'를 부르자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해남군이 전국 최초로 농민수당을 지급해 올해부터 전남의 시·군으로 확대됐다. 해남사랑상품권을 발행해 지역자본의 역외유출을 방지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했으며 지지부진했던 군 직영 온라인 쇼핑몰 '해남미소'가 시쳇말로 대박을 향해 달음박질하고 있다.

지자체가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지면 특산물의 불매로 이어지지만 긍정적인 이미지로 변신하면 특산물마저 날개를 달기도 한다.

무엇보다 관심이 많은 해남스러운 일들이 문화관광 분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해남미남축제의 성공적인 개최에 이어 '2020 해남방문의 해'다. 비록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지만 시작과 함께 가능성을 향한 첫발에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해남의 역사문화자원과 자연자원을 관광자원화해서 굴뚝 없는 관광산업을 활성화한다는 목표가 달성됐으면 한다. 농업도 단순한 생산에서 이제 가공, 유통, 관광까지 결합한 6차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 하나의 기대는 마을공동체의 복원이다. 지난달 26일, 주민자치와 커뮤니티 리빙랩이라는 주제로 열린 지방분권 포럼에 모인 군민들의 열정을 직접 보았다. 읍·면 주민자치 열풍이 기대된다. 그렇다고 무지갯빛 미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리더가 끌고만 가는 조직은 오래가지 못해 주저앉을 수도 있다. 이제 민방위 교육처럼 참석만 해서는 안 된다. 촛불혁명처럼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해야만 가능하다. 해남스러운 군민들의 참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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