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이 많은 부서에 근무하는 쫄병(졸병)들은 진짜 죽을 지경입니다. 주머니부터 먼저 만져봐야 하니까요. 나가면 의무적으로 쫄병(담당자)이 밥을 사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높으신 분들의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하위직은 맨날 마이너스 통장을 붙잡고 생활해야 하지요." 공무원노조 운동을 하다가 해고된 임종만(현재 창원 마산합포구청 수산산림 담당)씨가 2011년 출간한 '나는 공무원이다' 제목의 책에 나오는 글이다. 2년간의 법정소송을 거쳐 복직된 그는 '하급자가 밥을 사야하는' 공직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1년 후 2억 원의 저예산으로 만든 코미디 영화 '나는 공무원이다'가 개봉됐다. (임 씨의 책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지하수가 저희 담당이고, 그런 건 112에 해보셔야죠." 구청 환경과에 근무하는 7급 공무원 한대희(윤제문 주연)는 자살사건을 목격한 주민의 신고전화를 차분하게 거절한다. 내 소관이 아닌 일은 아예 상관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나름의 철학이다. 6급 승진을 바라보는 그는 민원인들의 고함에도 '조심 또 조심', '흥분하면 지는 거다'를 되뇌며 살아간다. 정시 퇴근에 임금 체불 없고,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보다 더 행복한 직업이 없다며 200% 만족감으로 살아간다.

해남에서 공무원으로 정년퇴임한 나의 장인이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있다. "남의 밥(봉급쟁이) 먹고 살려면 나라밥(공무원)을 먹어라." 그 저간은 영화에서 주인공이 생각하는 '공무원이 좋은 이유'와 일치한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18년간 유배생활을 한 강진에서 저술한 목민심서(牧民心書)는 200년이 흐른 지금의 공직자도 깊이 새겨야할 유익한 지침서이다. (베트남 지도자인 호치민도 머리맡에 두고 읽었다는 목민심서는 다산이 유배가 끝나고 2년 뒤 고향인 경기 남양주에서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민(牧民)은 백성을 이끌고 보호한다는 말이며, 심서(心書)는 다산이 직접 실행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이름 붙인 것이다.

다산은 저서에서 목민관(고을 수령, 지금의 지방자치단체장)의 기본 덕목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율기'(律己·스스로 다스리는 자기 수양), '봉공'(奉公·공무에 봉사하는 사회적 책임), '애민'(愛民·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 중에서도 최고의 덕목은 '애민'이다. 그래서 진정한 목민은 백성들에게 고운 옷 입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는 것이라고 했다.

다산의 3대 덕목을 기리고 전파하기 위해 행정안전부가 만든 상이 다산목민대상이다. 목민대상은 그동안 전남에서 함평군, 장흥군, 순천시 등 3개 시군이 받았다. 12회를 맞은 올해에는 해남군과 서울 구로구, 화성시가 선정돼 지난달 19일 시상식이 열렸다. 전국 24개 지자체가 응모한 이번 목민대상에는 1차 서류심사에서 10곳을 뽑은 뒤 2차 심사(각 지자체 공무원의 질의응답)를 거쳐 3개 시군구가 최종 선정됐다. 해남군은 이번 심사에서 주민의 삶을 살피는 맞춤형 정책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합계출산율 7년 연속 전국 1위, 해남사랑상품권과 연계한 농민수당 전국 첫 도입, 군민배심원제 등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목민의 핵심은 애민사상이다. 행정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모든 군민의 이익이다. 공직자 개개인이 한 단계 더 높은 행정서비스를 펼치려고 고민할 때 진정한 목민 상(象)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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