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농부)

 
 

'목포의 눈물'이란 가요가 있다. 호남인들이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이다. 무언가 애달픈 한을 담아내는 노래에 공감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달래려고 부르곤 한다. 오랫동안 한국 정치의 굴곡 과정에서 호남인들은 호적을 옮겨서 법적인 출신지를 세탁(?)하기도 하였고, 호남 출신임을 숨기거나 의도적으로 사투리를 잘 쓰지 않으려고 했다. 호남인 차별은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확연하게 드러났고, 공직뿐만 아니라 사기업에서도 차별당해왔다. 경상도 출신들이 호적을 옮기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누구인가 자신들을 대변해주는 인물이라고 생각되면 무한한(?) 응원을 보내주는 호남인들, 그 근저에 자리 잡은 피해의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의식이 선거 결과로 발표되면, 대부분 언론과 기득권 세력들은 전라도의 지역감정이라고 저렴하게 처리했다. 일면 맞는 면이 있으나 근본을 외면한 표피적 진단이다. 호남인들은 자신들을 배신한다고 느끼면 가차 없이 버린다. 지난 20대 선거에서 민주당을 궤멸시켰던 예가 그걸 잘 보여 준다.

경상도에서도 과연 그런 버림이 가능할까? 나라를 팔아먹은 자가 나와도 찍어줄 태세를 21대 총선에서 보여 주었다. 호남의 표심에는 차별에 대한 한이 서려 있고, 경상도의 표심에는 기득권을 경계하는 '정의'가 빠져있다. 양자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지역 차별은 오랫동안 퇴행적 집단의 기득권 안정을 도모하는, 이성적 정치를 차단하는 방패로 이용되어왔다.

1859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을 출간했다. 자연 선택 수단에 의해서 동물들이 진화한다는 소위 적자생존론을 정립한 저서이다. 인간은 신의 창조에 의한 산물이 아니라 자연 진화의 산물이라는 혁명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초래한 '종의 기원', 다윈 자신도 그것이 가져올 파장이 두려워서 오랜 기간 망설이다가 출판 한 책이다. 이 책은 과학이 입증해 낸 인류의 진화론이 설득력 있게 기독교식 창조론의 허상을 일반 대중에게 설파하였다. 코페르니쿠스가 뒤집은 천동설의 전회,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사상적 세계관의 전회보다도 더 충격이 컸다.

다윈의 진화론은 그 추종자들에게 하나의 교본이 되었고, 모든 논의가 통하는 길로 여겨져서 하나의 'ism'(주의,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하여 '다윈주의'는 모든 방면에 새로운 통치자로 등장하여, 역설적이게도 진화론의 과학적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다.

어떤 이는 지난 4월 21대 총선에서 목포 지역의 오랜 경륜의 정치가를 내 친 것은 좀 심했다고 말하며 목포의 눈물이 가셨나보다 하고 논평한다. 눈물이 멈춘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각, 아니 한 사람만 내세우는 낡은 정치인을 버린 것이다. 김대중의 정치를 버린 것이 아니고 그 추종자가 발전 없이 그 한 사람만 기대어 정치하는 수준을 심판한 것이다. 과학계가 발전하기 위해서 '다윈주의'를 버렸듯이, 호남인들은 '김대중 주의'처럼 정치 발전의 걸림돌을 버린 것이다.

21대 총선, '목포의 눈물'은 한 정치인의 퇴장을 가져온 눈물이지 목포인들, 아니 호남인들의 눈물은 아니다. 어느 한 지역을 '지역주의'로 담아서 소수의 영달에 이용하는 낡은 정치가 심판되었다고 본다. 더 멋진 일을 도모하는 일, 그것이 차별의 극복이다. 차별은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장애물이다.

낡은 이념이나 주의로 우리 주변을 배회하는 망령들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 많은 장애를 주어왔다. 호남의 차별을 걷어내는 일의 시작은 바로 어느 누군가만을 추종한 '주의자'로 행세하는 낡은 틀과 생각을 버리는 일이다. 그리하여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내려놓고 함께 가면 우리는 멋지게 일을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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