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성(공연 프로듀서)

 
 

지난밤 무서운 꿈을 꾸었다. 혼자서 탄천 옆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는데, 저만치 뒤에서 시커먼 개 한 마리가 혀를 늘어뜨리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두려움에 싸여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슬퍼 보이기도 했던 내 모습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다음에 개한테서 성공적으로 도망을 쳤는지, 물렸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내 이마와 코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던 것을 보면 무서운 꿈이었음은 분명하다.

여느 아침과 다름없이 우선 녹차를 내려 한 모금 입안에 머금었다. 그러고 나서 습관처럼 몇 부의 조간신문을 한 부 한 부 읽어 내려가다 꿈의 원인을 발견했다. 코로나 확산, 사회적 거리두기, 공연 연기, 행사 취소, 극장 폐쇄….

공연계에 불어 닥친 대내외적인 일련의 위기 상황들 속에서, 나의 도전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초조와 불안함이 원인이 되어 꿈으로 실현된 거라는, 나름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보고는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허허 웃었다. 그러다 문득 이제껏 내가 겪어왔던 실패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의 가장 부끄러운 실패의 기억은 뮤지컬 '갬블러'다. 책임감도, 사명감도, 새로운 도전도 없는, 그저 흥행 성적을 빨리 내고 싶어 과욕을 부린 프로듀서의 부끄러운 실패였다.

1990년대 후반, 뮤지컬 관객이 많지 않았던 시기에 초연이 막을 내린 지 불과 두 달도 안 되어서 재공연을 하는 것은 명백히 말도 안 되는 결정이었다. 7억의 손실. 순전히 내 욕심이 부른,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패였다.

가장 아쉬웠던 실패라고 하면 뮤지컬 '댄싱 쉐도우'를 떠올리게 된다. 7년 동안 45억 원을 들인 작품으로 극본, 연출, 음악, 안무, 무대, 의상, 조명디자인 등을 해외 유명 아티스트에게 맡기는 파격적인 시도를 하며 한국 창작 뮤지컬 제작 시스템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결과적으로 흥행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전적인 면에서는 '댄싱 쉐도우'가 '갬블러'보다 더 큰 실패지만 부끄러운 실패는 아니다. 새로운 제작 시스템에 대한 시도였고, 새로운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실패와 성공의 차이는 '다시 도전하는가, 거기에서 멈추는가'라고 생각된다.

좌절에 빠져 다시는 창작 뮤지컬을 만들지 않았다면 실패였을 것이다. 부끄러운 실패도, 아쉬운 실패도 내게는 빠짐없이 소중하다. 그 도전으로 나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경험을 얻었고, 그 경험은 바탕이 되어 조정래의 '아리랑'이라는 성공적인 창작 뮤지컬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개가 쫓아오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벅찬 일이 닥칠 흉몽이고, 개에 물려서 피가 났다면 돈과 재물이 들어오게 되는 길몽이라고 한다. 꿈의 마지막이 어떻게 끝나는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개가 끝까지 쫓아오는 마무리여서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가 닥쳐온다고 해도 나는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프로듀서로 살고 있는 한,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앞에 두고도 심사숙고하고 고뇌하며 머뭇거리는 햄릿이 아니라 풍차를 향해 무모하게 달려드는 돈키호테처럼 일단 끊임없이 '저지르는' 작품을 해나갈 것이다. 돈키호테는 미쳤다. 하지만 미치지 않은 돈키호테는 아무 매력이 없다. 그래서 일 저질렀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그 말을 듣는다는 것이 내가 아직은 쓸만한, 존재 이유가 있는 프로듀서라는 것을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박명성, 또 일 저질렀네!" "박명성 똥배짱을 누가 말려!"

"이 난리통에 괜찮겠어?"

언젠가 새로운 창작 뮤지컬을 무대 위에 '저지르는' 그 날이 오면 박정자, 손숙, 김성녀 선생을 비롯한 많은 어른들께서 해 주실 말씀이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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