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시인)

 
 

세계가 한국 방역을 칭찬한다. 기분 좋은 칭찬이라 마음이 붕 뜬다. 코로나 사태가 다급한 나라들이 입발림으로 칭찬하는 정도가 아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한국 방역의 성공원인을 찾아내고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그것도 통제와 억압을 바탕으로 한 중국 모델이 아니라 개방, 투명, 민주의 원칙이 한국방역의 근본적인 힘이라고들 하니 우리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찌들어있던 나같은 사람의 얼굴에도 잠시 주름살이 걷힌다.

'이게 나라냐!'고 외치던 촛불집회의 구호에는 민주에 대한 염원은 분명했지만 민주주의의 기본 꼴도 갖추지 못해 쓰레기 같다는, 어디다 내놓고 말도 할 수 없다는 부끄러움이 깔려 있었는데. 그게 불과 몇 해 전인데.

K-팝을 위시한 드라마, 영화 등 한류의 인기도 엄청나다. 빌보드 근방에도 가보지 못했던 한국가요가 몇 주 계속 빌보드 차트 1위를 장악하고 있다. 자유와 풍요가 넘치는 구미사회에 대한 우리의 콤플렉스는 식민지 이래로 떨쳐내기 어려운 것이었는데 그걸 넘어설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아 놀랍다.

서구 콤플렉스를 떨쳐버린 또 한 방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싹쓸이 한 일이었다. 상의 싹쓸이도 엄청났지만 누가 보기에도 영화는 탁월했고 그만큼 세계인은 열광했다. 불평등의 심화라는 전 세계적 문제를 그는 추켜잡았고 한국적 스토리는 살아있어 풍부하고 깊었고 여운은 오래도록 남았다.

재난지원금! 이 또한 아주 기쁜 일이었다. 억압적이기만 하고 가난한 사람들 살아가는 데 언제 한번 도움이라고는 주지 않았던 '나라' 라는 것이 모든 국민에게 어려우니 쓰시라고, 우선 이 돈 가지고 보릿고개 같은 이 어려움을 함께 살아서 넘어가자고 돈을 주다니! 코로나19가 지나고 나면 경제침체가 몰아닥칠 것이라는 걱정을 방패로 앞세우면서 나라는 무조건 돈을 아끼고 나라 곳간문은 잠그고 봐야 된다는 소리를 천 년 넘게 들어온 사람들에게 말이다.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경제학, 돌아야 돈이고, 돈이 돌아야 사람도 산다는 쉬운 경제학 진리를 가르쳐 주다니.

지원금이 풀리니 돼지고기, 소고기 값이 먼저 올랐다는 뉴스도 재미있다. 돈 생겼으니 폼 잡는 데 먼저가 아니라, 그간 고기도 별로 먹지 못했으니 고기 맛 좀 보이고 싶은 어머니가 웃는 가정의 저녁식탁이 떠올라 행복하다.

이렇게 좋은 일 천지인데도 비관주의자인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무엇으로도 상쇄할 수 없는 기록적 문제를 우리사회는 안고 있다. 산업재해 사망률도 1위이고 출산율은 꼴찌다. 살기 싫다는, 애 낳아서 키우고 싶지 않다는, 일하는 현장이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건 절대적 불행수치가 아닐 수 없다. 이 지표는 여전히 우리나라가 가장 문제 많은 사회라는 확증일 수 있다.

좋은 일에 억지로 걱정거리 내세워 기분 망치는 고약한 성격이라는 비난이 쏟아질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돌아보며 명심한다. 지금까지 성취한 이 모든 게 민주주의 힘이다. 민주는 이념을 앞세우는 사람들의 구호나 제도개혁에 멈추는 것이 아니다. 방역도 경제도 민주주의가 살려준다.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우리의 민주주의가 갈 길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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