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상(전 전라남도문화관광재단 사무처장)

 
 

지금 해남은 주민자치위원회 열풍이 불고 있다. 올해까지 14개 읍·면에 주민자치위원회가 만들어질 거라는 목표(?)도 나왔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굳이 주민자치위원회가 아닌 일부 면처럼 주민자치회로 바로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 선택 또한 주민자치 몫이다.

굳이 따진다면 주민자치위원회는 읍면동 주민자치센터의 운영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거나 결정하기 위해 지자체의 조례에 따라 설치된 주민협의체로, 주민자치센터의 문화·복지·편익시설과 프로그램 등 운영 및 읍면동 행정의 자문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주민자치회는 실질적 공동체 생활자치 실현을 위하여 시범운영 중인 주민협의체로, 기존 주민자치위원회가 담당하던 기능 외에도 주민화합 및 발전을 위한 주민자치업무, 지방자치단체의 위탁업무 등도 담당한다고 행정안전부가 밝힌바 있다.

지난해 말 배추밭에서 다친 허리치료를 위해 광주에 머문 적이 있다. 이때 광주광역시 서구의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가 발주한 2019 서구 마을공동체 활동 우수사례집을 만들고 있던 출판사 후배의 부탁으로 치료기간 동안 작가로 활동한 적이 있다. '마을에서 즐기자'라는 제목의 이 성과집에는 왜 광주시 서구 마을공동체 8곳이 전국주민자치박람회를 석권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금호1동주민자치회가 대상을 받은 이유도 알 수 있었다. 34개 마을공동체의 2019년 한해의 활동이 낱낱이 기록돼 있다. 주로 사진과 자료를 수집하고 공동체 대표를 인터뷰해 편집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대표와의 짧은 인터뷰에도 그 공동체의 '사이즈가 나온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놀랐다.

이곳도 두 곳만이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자치회로 개편됐으며 나머지는 준비 중이다. 주민자치회, 주민자치위원회, 마을공동체의 조직과 운영을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10년 전 귀농하면서 마을공동체 복원에 기여하겠다는 작은 목표를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주민자치위원회가 주최하는 주민총회를 지켜보면서 주민자치의 꽃을 본 것 같았다. 의제를 설정,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과정에 감동했다.

올해 초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직전에 거주하는 면에서 예비주민자치위원이라는 호칭으로 주민자치학교에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민방위 교육처럼 의무교육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즐거운 마음으로 이틀간의 주민자치 교육을 받았다. 오랜만에 다른 마을의 선후배들을 한 공간에서 만나 밀린 얘기도 나눌 수 있었고, 주민자치에 대한 전문가들의 교육이 귀에 속속 들어왔다.

서울시는 자치지원관 제도를 두고 마을전문가를 공무원으로 채용했다. 주민자치회의 인적구성 자체가 풍부해지고 복잡한 계획수립 과정에서부터 어떻게 토론하고, 어떻게 표현하고 결정해야 하는지를 전문가에 의해 학습되어지는 것이다. 광주광역시 서구도 마을공동체 대표들의 마인드와 역량이 넘쳐난다고 볼 수 있었다.

지역사회를 경영하는 역량은 행정에 있다. 주민끼리 하는 것도 자치고 행정과 함께 하는 것도 자치다. 굳이 협치라 할 수 있다. 거버넌스의 어원은 선박의 키라 한다. 지역사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행정에 의해 주민자치가 끌려만 가서도 안 된다. 두발자전거를 배우는 단계처럼 잠시 밀어주는 것이다. 불안해서 계속 잡고 가면 어찌될까. 가장 이상적인 것은 행정과 마을공동체 사이에 전문성을 갖고 봉사하겠다는 중간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 해남군에도 주민자치회, 주민자치위원회가 속속 만들어지면서 주민자치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사례집에도 담겨있지만 주민자치위원들이 무슨 감투나 쓴 것처럼 주민자치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시행착오를 우리 지역사회에서는 건너 뛰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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