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교사, 시인)

 
 

신의 제자가 인간이 아닌 바이러스임이 증명되었다(혹여 종교의 고유성이나 긍정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 단지 주장을 펴기 위해 전제하는 소리이니 오해 마시기를). 인간을 상대로 그 어떤 세계대전보다도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전쟁을 치르고 있는 코로나-19가 인간은 신의 뜻을 거역하며 그 반대편에 서있음을 보여주었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바이러스의 활동으로 더 많은 생명이 안전한(인류종을 포함하여) 지구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인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되묻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인류의 멸종과 그 이후에 대한 고민을 걱정하고 싶지 않다면 이제 우리를 돌아보아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화두는 돌아봄과 돌봄이 아니었을까? 바이러스 집단은 인간만의 세상일 수 없다는 걸 위기를 통해 보여주었다. 인류라는 생명 집단도 공동운명체임을 보여주었고, 이기적 타자로만 대하던 사이에서 약자의 고통을 바라보게 하였다. 약자의 현재 처지를 통해 강자의 반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기적 타자의 관계에서 이타적 연대의 관계를 일깨웠다고나 할까? 물론 몇 개월의 짧은 시간에 만족할 변화를 가져오기엔 그동안 쌓인 벽이 너무 견고하여 아직도 자성의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자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단 측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역할은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했다. 다양한 신을 권력의 배경으로 삼았던 일부 인간들에 의해 신은 우주 질서를 대신하게 됐다. 그리고 더 강한 권력은 더 강한 신을 앞세우게 된다. 신이 강자의 입장에서 호혜를 베풀며 약자들을 규합하며 세력을 키우는 역할을 담당하고, 강자들은 자본과 결탁하여 자본의 확대를 마치 신의 뜻인 양 내세우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본은 무지막지하게 영역을 넓혀가다가 급기야는 자연을 지배하려 들었다. 곳곳에서 자연은 파괴되었고, 자연성이나 질서마저 짓밟히며 신음하여 온 게 20세기 역사가 아닐까? 그 파괴된 자연은 다양한 생명체 사이의 경계를 지켜내지 못하고, 그들 사이의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교류시켜 버린 결과물 중 하나가 코로나 19가 아닐까?

자본은 결코 스스로 멈추지 않을 것이며 강자들은 계속하여 채찍을 휘두를 것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하여야 할까? 그 폭력적인 자본이나 강자들과 달리 어쩌면 이미 당신은 '돌아봄과 돌봄'을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그 선한 삶을 살고 있는 당신에게 현재 추구하는 방향을 전하고 싶다.

첫째는 길들여진 일상에서 탈출하자는 것이다. 특히 자본이나 도시형 삶에서 벗어나 넓은 자연에서 자생의 삶을 추구해 보자는 것.

둘째는 당신이 억울하다면 그것은 당신 탓이 아니란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당신은 그동안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그럼에도 당신의 삶이 늘 허덕이기만 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수고를 누군가 가로채게 놔두는 국가나 사회 때문일 것이다.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벗어나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하나?'를 살펴보잔 것이다.

또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과 출세는 무엇일까? 당신의 역사는 무엇일까? 나도 그렇듯 당신은 소중한 존재이다. 코로나19 이전의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다. 당신과 나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그동안이 내 삶을 허비하거나 소비하는 시대였다면 이제는 내 삶을 내게 돌려주고 나를 감싸고 있는 우리들과 서로 돌보는 시대일 것이다. 어쨌거나 바이러스 덕에 나나 당신은 사랑과 행복에 접근하는 철학을 얻었다. 이제 지긋지긋한 것들과 이별하자. 돌아가지 말자. 새롭게 꿈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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