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농부)

 
 

인간이 가진 많은 능력 중에서 '희망'이라는 능력은 장단점을 동시에 포장하지만 풀어낸 포장지는 다가오는 미래의 좋은 현상에 맞춰져 있다. 이로 인하여 살아갈 힘을 다시 얻게 되고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게 된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이 희망의 단점이지만, 그 희망을 이미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점이 아닌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희망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시간과 연결된 '나'이다.

희망은 모두에게 있고 모두에게 가능하다. 우리가 잘 느끼지 못 하지만 인간의 많은 일들은 예정된 일처럼 미래가 이루어진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삶으로써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들이 미래로 이미 정해져 버린 경우다. 매뉴얼처럼 일상이 돌아가는 집단 사회의 경우다. 희망은 예정된 일이 그대로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희망은 정해지지 않은 다른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당신이 보수적이라면 과거와 덜 바뀐 일상을 희망할 것이고, 진보적이라면 많이 바뀌어도 좋다는 일상을 꿈꿀 수도 있다. 그렇게 미래를 찾아 배회하는 시간이 나의 희망 만들기이다. 나에게 미래는 무엇인가. 우리 주변에 희망은 먼 나라 이야기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한다. 현실이 그렇게 사라져가는 가운데에서도 다시 나의 아름다웠던 청춘을 당겨봄은 어떨까. 미래를 이야기함은 나의 과거를 이야기함과 같다. 관에 못이 박히기 전이라면 비문을 쓸 시간은 있다고 말하는 여유가 희망이다.

내가 전혀 모르는 미래란 없다. 그것은 희망으로 오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일은 희망이 아니라 엉뚱한 과제처럼 다가올 뿐이다. 내가 가지는 희망은 지금의 '내'가 과거를 돌아보면서 만드는 내가 계획한 미래이다. 그래서 과거와의 대화를 잘하는 이가 아름다운 희망도 잘 만든다.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가 희망이다. 희망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의 '나'의 아름다운, 숨겨진 모습이다. 과거의 나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사과. 자신이 자신에게 사과하는 모습에서 아름다운 미래는 나온다. 솔직하고 진지한 자기 부정이 자기 긍정을 낳는다.

어버이날, 스승의날. 당신의 생일날도 그냥 지나갔음에도 전혀 모르는 이들이 찾아와 놓고 간 기념품으로 일회성 기념일이 희망으로 바뀌지 않는다. 기념일을 일회용품으로 바꾼 결과가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나의 자녀는 꼭 핏줄이 이어진 혈육들인가. 나의 제자들은 꼭 내가 가르친 학생들인가. 과거를 돌아보면 답이 있다.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이가 나의 자녀들이고 제자들일 수 있다. 그것이 나의 미래로 가는 길이다.

내가 지금 대접받는 일에 절망할 필요가 없다. 아름다운 청춘을 다시 꿈꾸는 나의 희망을 만들어 보려는 용기가 희망의 노래이다. 지금의 어려움을 거부하려는 나의 행동을 미래로 바꾸려는 노력, 그렇게 결심하면 우리 주변의 뭇 사람들이 어버이와 스승이 될 것이다. 지금 힘들다고 과거를 탓하고 미래를 없애지 말고 보다 나은 '나'를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고 과거의 '나'가 미래의 '나'에게 선물을 주면 어떨까. 내가 희망이고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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