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희(주부)

 
 

요즘 뜨거운 이슈 중 하나가 이태원 클럽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아파트 경비원의 자살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은 층간소음이 일으킨 주민 간 다툼, 경비원에게 갑질하는 입주민 같은 나쁜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제공한다. 공동주택인 아파트가 이웃이나 공동체보다는 이웃에 대한 무관심이나 개인주의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장소가 된 지는 오래다.

작년 내가 사는 아파트는 자체적으로 천변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그 때 모든 현수막을 무료로 제작해 준 702호 입주자가 "우리 아파트 사람들은 다 이웃사촌 같아요."라고 어느 술자리에서 말했다. 이웃사촌, 이게 바로 우리 아파트가 2020년 마을공동체 활동 지원사업에 공모하면서 설정한 사업의 궁극적 목표다. 올해 우리 아파트는 공모한 지원 사업의 씨앗단계에 운 좋게 선정되어 목표에 다가갈 수 있는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주차장에 벽화 그리기를 시작으로.

사실, 벽화를 그리기 위한 사전 작업인 벽에 간 금을 메우고 바탕제를 칠하면서도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공동체 회원들만의 활동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입주민들이 많이 참석한 신명나는 잔치판을 벌일 수 있을까? 마침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막기 위해서 실시했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 방역으로 바뀐다는 발표가 있었다. 더군다나 5월 5일 어린이날이 디데이였다. 잘하고 싶으면 싶을수록 걱정이 더 많아졌다.

그런데 안전하고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차량을 이동시켜 달라는 방송에 휴일 이른 아침인데도, 서둘러 나와 순식간에 주차장을 텅 비우고 있는 입주민들의 모습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아! 좋은 기운! 이런 입주민들의 배려와 동참으로 벽화는 일사천리로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쭈그려 앉아 세심하게 소년에게 파란색 줄무늬 옷을 입히고 있던 입주민 현희 씨가 일어나 한 발 물러서 그림을 쭉 훑어보더니 감탄을 한다. 이런 경험을 어디서 해보겠느냐며 잔잔한 얼굴을 웃음으로 물들였다. 코로나19로 오랫동안 갇혀 지냈던 아이들도 벽화를 그리다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깔깔거리며 흥을 더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화룡에 점정이 빠질까 걱정한 몇몇 입주민들이 기꺼이 장만해 준 점심, 주차장에 자리 펴고 둘러앉아 먹은 맛난 점심이 화룡점정이었다. 아침 일찍 가게로 출근한 샤샤맘 언니는 벽화 진행과정이 궁금하다며 오며가며 하더니 결국은 분위기에 취해 뒤풀이까지 함께하고 집으로 퇴근했다. 완벽한 날이었다. 가시지 않은 흥분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아침을 맞았는데 톡이 한 통 와 있었다. '어젠 너무 힘들었지요? 그래도 덕분에 우리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이 많이 뿌듯했어요.' 거실 창 앞에 서서 주차장을 내려다보는데 저절로 웃음이 났다.

자살한 서울 강북구의 어느 아파트 경비원 추모 모임은 기자회견을 열고 "경비노동자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파트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입주민도, 고용인도 각자의 일을 하면서 함께 행복하게 살 권리와 의무가 있는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우리의 쾌적한 생활환경을 위해서 수고하는 분들에게 "수고하세요." "고맙습니다."라고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파트 공동체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문득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생전 즐겨 불렀던 노래가 생각난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 부둥켜안을 때 모순덩어리 억압과 착취, 저 붉은 태양이 녹아내리네./…/아, 우리의 승리 죽어간 동지의 뜨거운 눈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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