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다. 쌀을 보관하는 곳간이 차야 주변 사람의 배고픔이 헤아려지고 도울 여유도 생겨난다는 말이다. 우리 선조에게 쌀은 곧 인정과 인심의 척도였다. 60∼70년대만 해도 제사 지내는 집에 친인척들이 쌀을 보냈다. 제사상에 쌀밥, 쌀떡, 쌀술을 올리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쌀을 보탰던 것이다.

쌀(벼, 밥)과 관련된 속담도 유난히 많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봄비는 쌀비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 등등. 영어(rice)는 벼, 쌀, 밥을 한 단어로 단칼(?)에 처리했지만, 우리말은 아주 세분화되어 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가 벼→쌀→밥으로 나뉜 것이다.

구례에서 섬진강을 따라 하동 방면으로 내려가면 왼쪽에 토지면 오미리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는 경북 안동출신으로 조선시대 낙안군수를 지냈던 유이주(1726~1797)가 지었다는 대저택(1776년 건축 당시 78칸이었다고 알려지나, 지금은 63칸이 남아있음)이 자리잡고 있다.

큰 사랑채의 이름을 따 '운조루(雲鳥樓-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라고 불리는 이 곳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하나는 '타인능해(他人能解-누구나 능히 열 수 있다)'라는 글자가 새겨진 나무로 만들어진 원형의 쌀독(뒤주)이다. 또 하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굴뚝. 낮은 굴뚝은 밥 짓는 연기가 멀리 퍼지는 것을 막아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소외감을 갖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뒤주는 쌀 두 가마 반(한 가마=80kg으로 환산하면 200kg)이 들어가는 크기로, 비워지면 다시 채워 넣어 매년 40가마(3200kg)를 배고픈 이웃들에게 내놓았다고 한다. 다소 생뚱맞은 비교이나, 쌀 40가마는 요즘 공기밥(한 공기 100g 기준)으로 3만2000그릇의 분량이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작년 연간 쌀 소비량(59.2㎏)으로 보면 54명이 한 해 동안 먹을 수 있다.(물론 당시 사람들은 지금보다 2배 이상 소비했을 것이다.) 유 씨 집안의 이런 기부와 나눔의 실천이 여순사건, 한국전쟁의 격동의 시대에도 큰 화를 당하지 않도록 했다.

'마더 테레사 효과'라는 게 있다.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거나, 단지 생각만 해도 신체의 면역력이 향상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1988년 미국 하버드 의대가 학생들을 상대로 한 실험에서 돈을 받는 노동과 대가 없이 봉사활동을 한 참가자들의 면역기능을 조사해보니 무료 봉사활동을 한 학생들에게 면역력이 크게 향상됐다. 이어진 실험에서 학생들에게 인도의 수녀 '마더 테레사(1910~1997)'의 글을 읽게 했더니 봉사활동에 참가하지 않아도 인체의 면역력이 크게 강화됐다는 것이다.

봉사와 기부는 해본 사람이 또 한다. '봉사와 기부는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자기만족감이 무엇보다 크기 때문이다. 베푸는 즐거움은 해본 사람만이 안다.

미국의 기부왕으로 알려진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은 끊임없이 기부하고 거의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기부는 사회에서 빌린 것을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해남에서도 줄 잇는 착한 임대료와 성금, 봉사 행렬은 코로나19라는 어둠을 물러나게 하는 빛줄기이자 희망의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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