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상(전 전라남도문화관광재단 사무처장)

 
 

몇해 전 같은 부서 후배가 모친상을 당했다. 광주의 유명한 고갯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 사고로 그 고개에는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여러 개 생겨났다. 슬퍼하는 후배를 위로하며 그때의 풍습대로 장례식장에서 철야를 했고 발인까지 함께 했다. 발인을 위해 유가족이 줄지어 있는데 후배의 아재뻘 되는 분의 일갈에 시선이 쏠렸다. "야, 이놈아. 니네 엄마가 어떤 차에 치여 돌아가셨는지 몰랐냐. 이런…." 영정을 싣고 선도차로 가야할 검은색 고급 세단과 같은 차종에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부랴부랴 다른 차종으로 바꾸고 그 분의 혀 차는 소리를 뒤로 하고 영구행렬은 떠났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차례 디테일에 숨어있는 악마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다 된 밥에 코 안 빠뜨리기 위해서다. 특히 행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관행이나 관성으로 처리한 일들이 사소한 요소들에 의해 되돌릴 수 없는 오점으로 남기도 한다. 수년간 문제없어 기계적으로 처리한 일이 작은 결점에서 시작해 걷잡을 수 없는 파괴력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마을을 찾은 방송차량에서 한 때 코로나일구가 아니라 코로나십구, 이상징후가 있을 때는 천삼백삼십구번으로 연락바란다고 했다. 국민들의 귀에 익숙한 1339(일삼삼구) 질병관리본부 대표전화를 왜 천삼백삼십구번으로 방송했을까? 아마 컴퓨터 음성으로 변환하면서 기계적, 관행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일 것이라 추측된다. 전남도에서 만든 것인지, 해남군에서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나마 그리 오래가지 않아 수정됐지만 악마의 목소리가 된 것은 사실이다.

21대 총선도 디테일에서 승부가 난 곳이 많았다. 심지어 바람에 기대어 실수만 안 해도 이길 수 있다는 선거전략으로 입단속만 했던 선거캠프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실수를 덜 하느냐로 승부가 결정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말실수는 더욱 그렇다. 지내놓고 되새김해보면 그리 큰 말실수도 아닌데 일단 엄청난 파장으로 확대 재생산되니 말이다. 요즈음처럼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도 없었을 것이다. '팩트(사실)'를 유언비어라는 올가미를 씌워 강력하게 단속했던 시절이 있었다. 군사정권은 국민의 알권리를 철저히 틀어막았던 것이다. 요즈음은 반대로 가짜뉴스로 선동하는 뉴미디어가 판을 치고 있고 전파력도 상상력을 초월한다.

선거를 치르는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디테일에 숨어있는 악마는 재앙 그 자체일 것이다. 보수언론은 여당 후보의 말실수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과 관련된 미국 언론의 기사를 번역게재하면서도 악마편집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편집하는 악마편집은 블로거나 1인 미디어에 의해 디테일 그 자체가 파헤쳐지는 세상이다. 원문을 대조해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대조해 가는 방식이다.

21대 총선이 여당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마당에도 지도부는 겸손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17일 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인 전원에게 편지를 보내 국민 앞에 항상 겸손하자고 당부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말과 행동을 각별히 조심하는 것이 국민의 뜻을 받드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도 낮은 자세를 취한 것은 디테일에 숨어있는 악마를 누르기 위한 전략이었을 것이다.

농사 또한 디테일이 중요하다. 곧 고추정식이 시작된다. 터널고추는 이미 덮어진 비닐 속에서 4월 하순의 꽃샘추위를 견디고 제법 푸릇푸릇해지고 있다. 고추농사에서 가장 힘든 것이 탄저병이라 한다. 적시에 방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탄저균의 피해는 오전과 오후가 전혀 다르다. 농사든, 행정이든, 선거든 세밀하게 살피지 않으면 악마의 놀림감이 되기 십상이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