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면 내가 다니던 대학 교정에는 몇 그루의 목련이 하얀 꽃봉오리를 한껏 토해냈다. '나무에서 피는 연'을 연상하게 한다고 이름 붙여진 목련(木蓮). 그 고결한 기품의 목련이 자태를 뽐내던 교정. 학문의 전당이라는 캠퍼스의 여기저기서 난무하는 최루탄 연기는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진 박정희 유신독재의 아바타(분신)를 자처한 전두환 군부세력의 서막을 알렸다.

새내기 대학생에게 드리워진 혼돈과 황량함이 '4월의 노래'가 되어 가슴에 울려 퍼졌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피리를 부노라/아 멀리 떠나와/이름 없는 항구에서/배를 타노라/돌아온 4월은/생명의 등불을/밝혀 든다/…//' 시인 박목월이 지은 이 가곡은 한국전쟁(1950~1953)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새로운 희망을 노래한 시대적 배경이 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러 다시 찾아온 4월에 가수 양희은이 '하얀 목련'을 노래했다. 30대 초 난소암 판정을 받고 시한부 삶을 살던 양희은은 병실 밖에 피어난 목련꽃을 보고 단숨에 노래 가사를 만들며 병마를 이겨내는 자양분으로 삼았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4월은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의 계절이자, 부활의 계절이다. 동양권의 달력은 계절의 특성을 따지지 않고 1~12월이라는 숫자로 명쾌(?)하게 처리해버렸지만, 라틴어에 어원을 둔 영어의 4월(April)은 '꽃이 피다', '만물이 열리다'는 뜻을 담고 있다. 벚꽃, 철쭉, 유채꽃, 튤립, 수선화, 복사꽃(복숭아꽃), 배꽃, 목련꽃… 등등. 4월은 가히 꽃들의 축제장이자 약동의 계절이다.

헌데 2020년은 '잔인한 4월'의 계절로 오랫동안 기억될 듯 싶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나라, 전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광풍은 우리의 삶을 온통 비정상으로 몰아넣었다. 용솟음 하는 4월의 향기를 만끽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차라리 사치에 가깝다. 수많은 사람들이 역병에 신음하고, 황량함은 거리를 휩쓸며, 생업은 뒷전에 밀려난 채 저마다 생존의 몸부림에 아우성 치고, 학생들은 일찍이 들어보지도 못한 온라인 개학에 황망하고…. 이런 공포스런 비정상이 언제쯤 종언을 고하게 될지 몰라 혼돈과 참담함이 우리를 더욱 짓누른다.

미국계 영국 시인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1888~1965)은 장시(長詩) '황무지'에서 4월을 노래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로 봄비를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주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의 유산인 황폐함과 정신적 허탈감을 이렇게 '잔인한 4월'로 표현했다.

이제 절반 정도 남은 2020년 4월을 잔인한 코로나19와 함께 역사 속으로 밀어 보내고, '계절의 여왕' 5월을 희망의 찬가로 맞이하는 꿈을 꾸어 본다. 우리의 삶이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신록의 푸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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