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상금(전 서울시의원)

 
 

나는 불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불교 예찬론자가 된 것은 순전히 법정스님 때문이다. 절(불교)에 대해서 아는 것은 유년 시절 초파일에 어머니 따라 은적사에 몇 번 다녀왔고 중, 고등학생 시절에는 봄 가을 소풍 때 대흥사에 자주 갔던 기억 뿐이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 스님의 법문과 「무소유」를 비롯한 그의 많은 책에서 자비에 대해 눈을 조금 떴다. 그런 스님이 입적하신지 10주기(3월 11일)가 됐다.

가끔 타지역 출신의 지인들과 고향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내가 큰 소리치며 자랑하는 셋은 대흥사, 녹우당 그리고 법정스님이다. 이 가운데서 내가 특히 법정스님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는 천민자본주의에 매돌되어있는 이 시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소유」라는 책과 화두로 우리의 삶을 맑고 향기롭게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스님의 설법은 언제나 부처님의 가르침에만 그치지 않았다. 서울 성북구 길상사 극락전에서 매월 한 번씩 열리던 법회는 매회 마다 일천여명의 불자가 모여들었다. 어느해 유난히 청명하던 가을날의 설법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한미 FTA 협상은 단순한 통상협상이 아니다. 사회전환 프로그램이며 말로는 자유무역협상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강자의 보호주의 무역에 불과하다. FTA가 체결되면 몇몇은 이익을 보겠지만 대다수의 서민과 농민은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 비수처럼 꽂히던 그날의 설법은 지금도 내 귀에 쟁쟁하다.

법정스님은 「불교신문」 주필과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으로, 뛰어난 필력과 설법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었다. 스님은 언제나 "복이란 누군가 주기 때문에 내가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다"고 강조했다. 또 "그림자가 실체를 반영하듯이 좋은 마음을 내면 천당이 되고 나쁜 마음을 내면 괴로운 지옥에 빠지게 된다"고도 했다.

뿐만 아니라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소유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고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에 있다"고 가르쳐주셨다. 또 "선택한 가난은 소극적인 생활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살 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고 하시던 낭낭한 목소리는 지금도 내 귀에서 맴돌고 있다.

스님의 10주기 추모제를 맞으며 무소유의 참진리를 알기 쉽게 깨우쳐 주시던 가르침을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되새겼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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