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희(주부)

 
 

"엄마, 마스크 한 장 가져갈게요"

"또? 어제도 가져갔잖아"

"아니야. 한 3일은 썼을 걸"

"작작 싸돌아 다녀라. 이게 언제 끝날지 알겠니? 마스크 구하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렵대. 넌 뉴스도 안 보니?"

마스크를 한 장 꺼내들고 나가는 아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그날, 유치원과 초중고 개학이 23일로 또 연기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는 예전 유행어를 되살린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소란스럽지 않은 곳이 없다. 2월 10일 봉준호의 오스카 4관왕 낭보의 기쁨도 잠시 코로나19는 신천지 신도, 31번째 확진자가 슈퍼전파자로 판명되면서부터 우리 사회 전체는 코로나19 공포에 휩쓸렸다.

바이러스 감염이 두려운 이유는 감염되면 본인만 격리 치료받으면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심하게 겪었던 사스와 메르스 보다 더 전파력이 강한 코로나19는 불특정 다수를 꼼짝 못 하게 하는 바이러스이다.

그런데도 종교의 탈을 쓴 많은 몰지각한 확진자들의 행동이 전체 한국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하찮았던(?) 마스크를 사재기, 품귀현상, 대란이란 말을 달고 다니는 귀하디귀한 물건으로 만들면서 사회가 온통 비상식적 혼란을 겪고 있다. 마스크를 사려고 수백 명이 줄 서 있는 모습이 날마다 큰 뉴스거리가 된 지는 오래다.

그렇다고 다 큰 아이는 물론 일 하러 가는 남편도 잡아 앉힐 수 없어 걱정인데 '마스크 공장 사장, 유통업 아들에 350만장 몰아주고 15배 폭리'라는 제목의 인터넷 기사가 떴다. 세상에나. 3일째 쓰고 있는 마스크를 지퍼 팩에서 꺼내 쓰는데 입맛이 쓰디쓰다.

며칠 전에 김구라 "여러모로 문송(?)합니다…"라는 헤드라인이 포털 네이버의 연애 판에 올라와 있었다. 개그맨 김구라가 영어영문학 학사라고 방송에서 여러 번 들어서 그랬는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클릭해서 기사를 읽어보니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이유의 문송합니다였다.

'문송합니다'는 '문과여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이다. 이는 특히 인문계 졸업생들이 취업이 안 되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문송합니다'라는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인문계열 학생들이 처한 환경이 그대로 전달되어 마음이 짠해지지만 인문학을 공부하고 전공한 것이 죄송한 세상 그 자체가 몰상식한 건 아닐까? 기부라는 숭고한 행위에 돌을 던질 수 있는 그 마음들의 근원은 어디인지 궁금하다.

사회 전체를 혼란 속으로 밀어 넣은 코로나19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어떻게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게 하며 그동안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정부가 일하는 모양새도 때로 그렇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 삼아 비상식이 상식의 눈을 가리는, 경쟁과 성과 그리고 독선과 아집이 과정과 협동과 협치를 뒷전에 두게 하는, 사익에 의해 공익이 점거되는, 그동안은 낯익었던 이 현상이 낯설게 될 기회가 되면 좋겠다. 이를 위한 첫 걸음을 이성에 근거한 인문학 그리고 공동체 의식의 활성화로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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