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에누리' 이야기를 했다. '에누리'라는 낱말에는 물건 값을 올려 부른다는 뜻도 있고, 그 물건 값을 내리고자 깎는 일이라는 정 반대의 뜻이 같이 있다. 또, 말할 때 뻥을 튀기며 말 하는 것도 '에누리'이고, 엄살 부리면서 말하는 것도 '에누리'이다. 이처럼 한 낱말에 서로 반대되는 뜻을 지닌 낱말이 '빚쟁이'이다.

'빚쟁이'는 남에게 갚아야 할 돈을 뜻하는 '빚' 뒤에, 그것을 나타내는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을 뜻하는 뒷가지(접미사) '-쟁이'가 붙은 낱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남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와 함께 '빚쟁이에게 시달리다, 그는 빚 독촉에 못 이겨 집을 빚쟁이에게 넘기고 말았다'는 보기를 들었고, "빚을 진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와 함께 '소를 사육했다가 하루아침에 빚쟁이가 된 농민들'이라는 보기를 들었다. 한마디로 돈을 빌려준 사람도 '빚쟁이'이고, 남에게 돈을 빌린 사람도 '빚쟁이'이다. 한 낱말에 뜻이 두 가지이다 보니 문장에 따라 뜻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빚은 없는 게 좋지만, 부득이하게 빚을 진 '빚쟁이'라면 하루빨리 갚아야 하고 남에게 돈을 빌려 준 '빚쟁이'라면 발 뻗고 잘 수 있게 아량을 베풀 일이다. 내가 베푼 친절은 언젠가는 다 돌아온다. 나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자식에게라도 꼭 돌아오는 게 베풂에 대한 보답이다.

올해는 해남군 땅을 딛고 사는 모든 사람들이 빚을 다 갚고 빚쟁이에서 벗어나길 빌고 또 빈다.

 

성 제 훈(농촌진흥청 연구관)
성 제 훈(농촌진흥청 연구관)

<필자 소개> 
· 성제훈 박사, 1967년 화산면 명금마을 출생
· 전남대학교 농학박사 취득
· 현)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과장 재직
· 저서) 우리말 편지 Ⅰ·Ⅱ
· 올바른 우리말 쓰기를 위해 활발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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