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농부)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공부해서 남 주냐, 열심히 해라" 하고 듣던 말이 생각난다. 공부를 출세 수단으로 본 세상에서는 합당한 말이다. 조선의 양반 세상이 무너지고, 쌍놈과 양반 세상이 뒤집혀 있으니 공부해서 신분을 상승시키지 못하면 실패자가 되는 세상에서는 그렇다. 공부가 신분 상승의 제일가는 수단이요, 개천에서 수십 마리의 용들이 날아가는 걸 보았으니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 시절이 아득히 지나가고 농촌에 젊은이들이 남아 있지 않은 세상에서는 이런 말을 들어줄 사람조차 없다. 그럼에도 가끔 마주하는 젊은이에게 이런 말을 하면 맞을까. 개천에서 날아갔다고 믿은 그 '용'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할까. 그들은 정말 '용'이었을까. 마을마다 남아 있는 개천에는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다. 그 '용'들이 벌인 사업으로 물이 말랐다. 사람도 말랐다. 개천은 툭하면 시멘트로 덮힌다. 아마도 '용'이 아니라 뱀 꼬리 잡은 이무기들이었으리라.

성공신화에 앞만 보고 뛰었던 개발시대는 이제 종언을 고했다. 그럼에도 마치 로또에 당첨되어 인생을 바꾸겠다는 하루살이 개꿈에 절어 사는 인생처럼, 성공의 일념으로 인생의 종점을 향해 아직도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는 이들의 환상은 자기 안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남을 괴롭히는 하루살이 인생으로 뛰고 있다. 불법이든 탈법이든 뇌물이든 룸싸롱 접대든 수완(?)만 잘 발휘하면 성공하는 시대는 갔다.

서로 배려하고 돕는 사회, 그것이 성공한 사회의 참 모습이다. 남이야 뭐라 하든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가봐야 오래 못 간다. 세상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타인을 무시하고 나 혼자 맘대로 휘젓는 하루살이들 세상을 버린 지 오래다. 중국 우한시에서 전파되기 시작한 코로나 바이러스도 알고 보면 인간의 못된 식습관과 불법적인 돈벌이에서 시작한 것이다. 병적인 식욕을 채우고자 벌였던 동물 살육의 잔치는 인간에게 재앙으로 돌아왔다.

인간이 자연을 거스르면 언제인가는 그 자연 속에 혼자만 살 수 없기에 인간은 복수(?) 당한다. 마찬가지로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인간이 혼자서 사회를 거스르고 살면 언제인가는 벌을 받게 된다. 배울 만큼 배운 사회일수록 진실이 힘을 얻고 가짜는 바로 걸러져서 사라질 것 같지만, 배운 자들이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 출세하겠다고 가짜든 조작이든 상관없이 마구 퍼뜨리면, 진실이 가짜로 취급되는 세상이 되어 버린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주문은 버리고, 호랑이에게 물려가지 않도록 같이 힘써줄 이웃을 찾고 함께 방책을 세움이 더 안전하다. 없는 호랑이 만들어 공포 속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대처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자신이 쓰고 있는 마스크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마스크 없으면 죽는다는 과장된 공포는 버려야 한다.

안전사회, 그것은 상식이 통하고 과학이 숨 쉬는 사회이고, 함께 배려하고 돕는 사회다. 정신이 건강한, 공동체 정신이 건강한 사회가 참다운 인간 세상이다. 제대로 잘 배워 나를 넘어 남을 위해 쓰는 사회가 아름다운 세상이다. 하루살이의 꿈을 이룬 '용'은 없어도 우리가 뛰어놀 개천에 물이 마르지 않는 사회, 미꾸라지가 넘치는 사회, 그것이 오래가는 사회이며 아름다운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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