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아 어머니와 함께 해남 장에 들러 제수용품을 샀다. 전통시장을 찾는 맛은 역시 '흥정하는 맛'이다. 어머니는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딨냐며 좀 깎아달라고 하고, 아주머니는 에누리가 하나도 없어서 깎아줄 수 없다고 한다. 두 분 다 '에누리' 라고 하신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에누리'를 찾아보면 크게 네 가지 뜻이 나온다. 가장 먼저 나오는 게 "물건 값을 받을 값보다 더 많이 부르는 일. 또는 그 물건값" 이다. '이건 에누리가 없는 정가이다.' 라고 쓸 수 있다.

다음에 나오는 뜻은 "값을 깎는 일"로 '정가가 만 원인데 오천 원에 달라니 에누리가 너무 심하지 않소?' 처럼 쓸 수 있다.

세 번째로 나오는 뜻은 "실제보다 더 보태거나 깎아서 말하는 일"로 '그의 말에는 에누리도 섞여 있다.' 처럼 쓸 수 있다.

맨 마지막에 나오는 뜻은 "용서하거나 사정을 보아주는 일"로 '일 년 열두 달도 다 사람이 만든 거고 노래도 다 사람이 만든 건데 에누리 없이 사는 사람 있던가?'처럼 쓸 수 있다.

이처럼 '에누리'에는 물건 값을 올려 부른다는 뜻도 있고, 그 물건 값을 내리고자 깎는 일이라는 정 반대의 뜻이 같이 들어 있다. 말할 때 뻥을 튀기며 말 하는 것도 '에누리'이고, 엄살 부리면서 말하는 것도 '에누리'이다. 재밌는 낱말이다.

해남 장에서, 어머니가 쓰신 '에누리'와 상인 아주머니가 쓰신 '에누리'는 뜻이 정반대였지만, 그래도 서로 통하는 한마디는 '에누리를 좀 해 주셔야 다음에 또 오지요!' 일 것이다.

올 한 해, 혹시 서운할 일이 있더라도, 용서하거나 사정을 봐주면서 '에누리' 하며 살 일이다. 그것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잘 사는 길이다.

 

성 제 훈(농촌진흥청 연구관)
성 제 훈(농촌진흥청 연구관)

<필자 소개> 
· 성제훈 박사, 1967년 화산면 명금마을 출생
· 전남대학교 농학박사 취득
· 현)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과장 재직
· 저서) 우리말 편지 Ⅰ·Ⅱ
· 올바른 우리말 쓰기를 위해 활발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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