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성 (공연 프로듀서)

 
 

공연계에서 35년 동안 일하면서 문화가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문화 관련 행사에 와서는 문화예술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사회지도층으로서 진정성을 갖고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문화정책을 내놓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단순히 그 자리에 와있는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화정책을 만들고 문화강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 순간에 단기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라톤과 같은 긴 호흡으로 정책을 만들고 실현해야 하는 문화특성상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한류가 시작되기 전부터 문화산업 육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BTS'가 전세계를 강타하자 한류에 대한 말들이 더욱더 많이 나온다. 그러나 그러한 말들이 실제 정책으로 실현되는 예는 극히 드물다. 그 원인은 역설적이게도 문화산업에 대한 조급한 인식 때문인 것 같다.

문화 콘텐츠를 산업적인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문화산업은 예술적 가치, 즉 정신적인 가치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예산을 투입했을 때 고속도로를 뚫고 뉴타운을 만들고 제조업 등 눈에 보이는 사업은 투자한 재원만큼의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타난다. 성공, 실패를 떠나 결과물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가 있다.

그런데 문화산업은 다르다. 투입한 예산만큼 결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문화는 사람들의 삶에 녹아 들어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전 세계 문화 강국들은 이미 문화를 마치 의식주처럼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생활 속의 예술로 자리잡은 것이다. 또한 문화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국민들의 의식은 수많은 창조적인(창의적인) 건축물과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정도로 창조성 가득한 선진국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영국의 경우,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와 뮤지컬 <마틸다>에는 어른 배우들보다 어린이 배우들이 훨씬 많이 나오며, 이 수많은 어린이 배우들이 지속적으로 발굴되어 수년 동안 똑같은 작품 수준을 유지하며 공연을 지속한다.

그들은 영국 최고 권위인 올리비에상을 수상하며 발군의 연기력으로 성인 배우들보다 더 프로다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어린이 배우 인프라가 엄청난 것이다. 이것 또한 유아기부터 삶 속에 녹아있는 예술 교육 때문이다. 영국은 이런 가치들로부터 레미제라블, 미스사이공,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 등 세계를 뒤흔들고 세계인들을 감동시키는 수많은 명작들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바로 문화에 투자함으로써 되 돌려받는 수익이다. 많은 국민들이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고 그것으로 더욱 창조적인 삶을 꿈꿀 수 있는 것 자체가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문화투자일 것이다. 문화의 목적이 국민의 행복에 있다면 다양한 문화 콘텐츠 육성 역시 중요한 현안이다.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줄 수 있는 것이 문화복지이고 문화가 있는 삶이다.

이러한 문화투자의 기반 위에서 우리의 문화가 국민들의 삶과 함께하고 전 세계인이 함께 누리는 문화강국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