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교사, 시인)

 
 

때가 때인지라 여기저기 멋진(?) 사람들이 창궐하고 있다. 몰래몰래 뿌려지는 명함을 보면 '와~ 대단한 사람이구나, 솔직히 뭔 일을 하는지는 모른다'. 뭔가 대단해 보이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그들의 이력. 우리는 그 이력에 대해 모른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그들이 와서 다정하게 인사하며 손을 덥석 잡는 행위가 불편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던 사람들이 뜬금없이 나타나 다정한 척 한다(?). 영 께름하다. '선거가 임박했구나'. 그러고 보니, 국회의원선거가 4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이렇게 나타나는 사람들을 보고 첫머리에서 '창궐한다'고 표현했다. 이 시기가 되면 봉사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 애국 애민의 사랑으로 살아온 사람, 가난한 사람·불편한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 못 견디겠다는 사람, 지역을 위해서라면 목숨이 아깝지 않다는 사람, 엄청 잘난 사람들이 쏟아진다.

이 시기만 보면 세상 사람들이 너무도 아름답고 다정하다. 세상은 너무도 공정하고 미래는 장밋빛이 된다. 오호 통제라, 이런 세상을 내 살아 생전에 보게 될 줄이야…. 저 대단한 사람들이 내게 조아리고, 내 소망을 목숨 걸고서라도 이루고 말겠단다. 오~ 아름다운 세상이여 지금처럼만 쭈욱~ 가주면 안 되겠니?

그러나 내게 그를 위한 신의는 없다. 10년 전이나 이 나라가 처음 생겼을 때를 돌아보라. 지금 뭐가 달라졌는가? 그들은 선거가 끝나는 날 다 사라진다. 4월 잔설처럼 그들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심지어 당선된 자마저도 어제의 그가 아니었다. 거들먹거리는 어깨, 늘 그랬다. 이 선거의 뒤끝은 한 번도 엇나가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는 걸 경험으로 예견한다.

당신을 찾아다니는 그 낯선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라. 그들은 어디서 왔는가? 경험 한 가지 얘기하려 한다. 우리 지역에서 중학교 쯤 나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릴 적 부모를 떠나 도시의 어느 고등학교로 떠났다. 후에 들은 얘기로는 그가 서울의 어느 대학엘 갔다고 했다. 고향에 남은 그의 부모는 잔치를 했다던가…. 그는 공부한다면서 명절에도 거의 오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자랑을 늘어놓다가 그가 40쯤 되었을 때 도시로 이사를 갔다. 그는 검사인가를 하면서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법 앞에 많이 세웠다. 그는 승승장구했으나 어느 날 후배에게 밀려 변호사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그가 선거 4~5개월을 남기고 떡 하니 고향에 나타났다. 내게도 그를 볼 수 있는 영광이 주어졌다. 그는 우리 지역의 구세주를 자처하며 밤낮없이 마을을 뒤지고 다녔다.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과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과 눈만 씀벅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윽고 어느 회사에서 사장을 했다는 사람도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다닌다. 정치한답시고 손가락질께나 받고 있던 누구도 돌아다니고, 선대부터 방구께나 꼈다는 누구네 아들도 돌아다닌다. 양아치처럼 굴던 누구의 이름도 떠돌고, 동네 물 다 썩게 한 축산갑부 누구의 이름도 떠돈다. 마치 좀비들처럼, 여기저기를 배회하는 무리들, 그들은 드디어 창궐할 때를 만난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왜, 한결같이 동네 사람들과 호흡하던 윗동네 농부 오씨는 나서지 않는가? 왜, 낚시해서 노모를 모시고 사는 정씨는 나서지 못 하는가? 왜 아랫동네 청년 최군 같은 멋진 친구를 내세우진 않는가?

왜, 왜, 지역에 고개도 돌리지 않던 그들만이 판치는가? 언제까지 검사 판사 출신, 재벌 사장 출신들만 판치게 할 셈인가? 나는 그들이 한 번도 우리를 위해 일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이제 우리 동네 사람이 우리 지역에서 일하게 하자. 며느리 사정은 사위가 안다든가, 우리 사정 아는 이웃집 아재나 옆 동네 벗이 국회의원 좀 하게 하자. 국회의원, 그거 우리가 좀 하자. 우리 일 이제 우리가 하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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