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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일기 - 지렁이의 꿈, 번데기의 꿈정성기(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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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22  11: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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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써온 글들을 모아 '이슬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다. 오랜 제자들에게 한 권씩 보내기 위해 주소를 알려주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제자들이 주소를 보내왔다. 'Sh'도 주소를 보내왔다. 세상에나, 광주전남 모 지청 주소가 적혀있는 것이 아닌가. 경기도 모 지청에서 근무했는데….

Sh는 S초등학교 6학년 때의 제자다. Sh는 영리한 아이였다. 교실에서 책만 보는 아이였다. Sh는 반장을 하지 못했다. 반장은 성적순이 아니기 때문이다. Sh 엄마는 나와 동갑으로 반의 학부모 대표를 했다. 아들을 위한 교육 열의는 맹모삼천지교를 뛰어넘었다. S초등학교는 영세민 아파트단지에 있다.

나는 이 아이들과 거의 날마다 축구를 했다. 아이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팀 이름을 '지렁이'와 '번데기'로 했다. 아이들은 유치하다며 처음엔 싫어했다. 그러나 이름을 그렇게 부른 이유를 설명하니, 아이들은 차츰 자기 팀 이름에 애정을 갖고 똘똘 뭉쳐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용의 승천을 꿈꾸는 지렁이, 나비의 비상을 꿈꾸는 번데기였다. 졸업식 날 교실에서 마지막 인사를 할 때 한 아이가 훌쩍이기 시작하자, 어느새 교실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나도 눈물을 감추느라 고개를 돌려야 했다.

Sh는 D중으로 배정을 받았다. 중학교 입학하던 날 저녁, 엄마가 전화로 아들이 반 배치고사 전체 3등이라고 했다. 3반에 배정 되었고, 반장이 된다고 했다. 1학년은 각 반에서 배치고사 1등이 반장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들뜬 엄마의 목소리에 감격의 기쁨이 묻어났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러나 Sh는 반장이 되지 못했다. Sh 엄마가 울먹이면서 전해준 사연은 이렇다. 담임이 3반은 1등이 두 명이라고 했단다. 1등 중 한 명은 Sh이고, 다른 한 명은 유일하게 송원사립학교를 나온 아이란다. 그러니 공동 1등 두 명을 후보로 해 반장 투표를 해야 한다고 했단다. 담임은 투표의 공평함을 위한다고 Sh 모교 S초등 출신은 투표권을 주지 않았단다. S초등에서 6학년 때 다른 학교로 전학간 아이도 투표를 하지 말라 했단다. 결과는 송원사립학교 출신 아이가 반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바로 Sh 담임에게 전화를 했다. 담임은 내가 말할 틈도 없이 계속 말을 했다. 내가 물었다. " S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겠다고 할 때 아이들이 동의하던가요?" "그럼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우리 김대중 후보가 김영삼에게 진 것은 경상도가 우리 전라도보다 인구가 훨씬 많기 때문 아닌가요?" 담임이란 사람, 통화로 시시비비를 가릴 수준이 아니었다.

다음 날 학교로 출근하여 교장선생님께 사실을 말씀 드렸다. 교장은 불같이 화를 내며 D중학교로 쫓아가 교장을 만나 책상을 치면서 따졌다. D중 교장이 Sh 엄마를 만나 사과했다. 정말 잘못했다고 사과하면서 Sh 엄마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반을 옮겨주라면 반을 옮겨주고, 담임을 바꾸라면 담임을 바꾸겠다고 했다. 하지만 Sh 엄마는 자식을 학교에 맡긴 죄(?)로 그리 못하겠더라고 나에게 말했다. 내 제자 Sh는 반장을 하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된 제자는 여전히 공부를 잘했다. 수능일 날 수능시험장까지 제자를 내 승용차에 태우고 갔다. 나는 제자에게 공부 열심히 해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했다. 빨리 자립해 엄마를 도우라는 뜻이었다. 제자는 서울의 명문 법대를 갔다. 제자는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제자는 대한민국 검사다.

검찰개혁이 정치권의 화두이다. 권력의 진짜 주인 국민이 분노의 함성으로 검찰의 적폐청산을 요구하고 있다. 강자의 무법적 횡포를 법으로 제어하고 약자의 피해를 법으로 보호하는 것이 법의 정신이다. 검찰의 역할은 법의 정신 구현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는 사람들의 삶을 아파하는 가슴 따스한 검사, 억울한 사람 없게 검찰권을 공정하게 행사하는 정의로운 검사, 그런 멋진 검사는 영화에만 존재하는가? 나는 내 제자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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