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시인, 아동문학가)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 산을 마주하면
늘 푸른빛으로 우리와 함께 했던 솔,
찬란한 오천년의 향기는
역사의 고비마다 민족의 혼불로 타올랐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
서슴없이 아궁이에 몸을 던져
두꺼운 구들장을 달궜던 밤,
이불을 서로 끌어당기지 않아도 참 따뜻했다
왜놈들이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외치며
미치광이처럼 조선 땅을 짓밟았을 때
거북선의 돛이 되고 키가 되고 노가 되어
안택선*을 천길 바다 속으로 가라앉혔다.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대
왜놈들의 총칼 앞에서
조선인들의 혈맥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와도 같았던 송진을 뽑아
전쟁터로 보냈던 쓰라린 흉터,

온갖 아픔을 딛고
해란강 언덕 위에 우뚝 서서
선구자들의 혼이 되고 꿈이 되었던 일송정.

추사*가 유배지에서 붓으로 쳤던 솔*,
세찬 눈보라가 몰아쳐도 쓰려지지 않고
허허 벌판에 서서
이 땅을 지켰던 고고한 절개는
민족의 정신으로 뿌리내렸다
솔아, 푸른 솔아!
영겁의 세월이 흘려도
한결같은 푸르름으로
우리의 지붕이 되고 기둥이 되리라.

* 정명가도(征明假道) :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조선 정부에게 강요한 내용. 곧, 일본군이 명을 침략하고자 하니 조선은 명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는 것이다. 
* 안택선 :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이 사용하던 대형 전투함.
* 추사 : 김정희의 호,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실학자.
* 솔 : 추사 김정희가 1840년(헌종 6)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 중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 준 세한도에 그려진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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