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사회로의 진입 불가피
'뿌리의식'가진 세계시민 양성

 
 

|싣는 순서|

① 한민족과 디아스포라
② 재일코리언의 역사
③ 재일코리언의 현실 Ⅰ(오사카 코리아타운)
④ 재일코리언의 현실 Ⅱ(교토 우토로마을)
⑤ 재일코리언 마이너리티로서의 정체성
⑥ 차별과 동화 압력을 넘어 미래로
⑦ 다양성과 관용 가치실현을 위한 지역의 과제

 

 

 

▲ 2019년 7월 초 교토 시내 중심가에서 벌어진 탈원전 시민행동의 시위 모습. 최근 일본사회의 우경화 영향 때문인지 시위 참가자들은 대부분 고령자로 젊은 세대 참여는 저조하다.
▲ 2019년 7월 초 교토 시내 중심가에서 벌어진 탈원전 시민행동의 시위 모습. 최근 일본사회의 우경화 영향 때문인지 시위 참가자들은 대부분 고령자로 젊은 세대 참여는 저조하다.

재일(在日·자이니찌)이라는 용어는 일본 사회에서 차별을 함의하고 있는 말이다. 무국적 난민상태로 조국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일본으로부터 구별되고 차별받아온 재일코리언들은 한일국교 정상화 시 법적지위를 보장받지 못하고 취업이나 사회보험, 연금 등에서 차별을 받아왔다. 특별영주권자로서 납세의무를 다하면서도 지금까지 참정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불이익과 천대로 얼룩진 민족적 차별은 사회적 차별로 이어져 의료·교육·주거·교육·취업 등 모든 영역에서 제도적으로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1980년 9월 한종석 씨가 "지문날인은 굴욕의 낙인"이라며 거부해 시작된 지문날인거부운동이 가와사키(川崎)시와 같은 '혁신지자체'의 상향식 다문화정책에 힘입어 재일코리언 인권증진과 지문날인철폐 등의 성과를 얻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재일조선인 1세, 2세들이 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며 필사적으로 삶을 일궈온 세대라면 그 이후 세대들은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취업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으로 귀화가 급격히 증가했다. 재일코리언 동포 간 결혼보다도 일본인과의 결혼 비율이 늘어나는 것도 재일코리언 사회의 분화를 촉진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재일코리언들이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뿌리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폭넓게 살아가기 위해서 한국과 일본의 경계를 넘나드는 세계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양성하는 것이 재일코리언 교육이 지향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우리 사회 역시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에 인색하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공생이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공동체와 지역사회 변화를 위한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지역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첫째,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정확히 이해하고 인식해야 한다. 오늘날 한일 간 갈등사태는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정확하게 교육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역사를 몰이해한다. 자신들이 침략전쟁을 일으킨 가해자임에도 피해자인양 행세하고 있는 것을 자각하지 못할 수 있다.

특히 일본 내 우파들은 조선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일본땅에 살게 되었는지 자신들에게 불편한 과거사는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려는 심리로 역사적 과오를 애써 은폐하고 억지 주장을 하고 펼치고 있다.

둘째, 개인과 국가를 동일시 하지 말고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야 한다.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이 일본 사람 개개인에 대한 감정이 아닌 역사를 직시하지 못하는 아베 정권에 대한 반대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100여일이 흘러도 흔들림 없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성숙한 역량을 볼 수 있다.

셋째, 평화와 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와 환경보호, 반핵운동 등의 이슈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힘을 모으는 풀뿌리조직 조직화와 상호교류가 중요하다. 한국사회는 다문화 사회가 되면서 다문화가정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의 다문화정책은 하향식으로 추진되면서 비교적 단기간에 제도와 재원이 마련되었다.

지역주민의 참여보다는 중앙정부 주도형의 다문화정책은 일방적이고 대상화하는 경황이 있기 때문에 외국인과 귀화 한국인들이 생활에 유용한 시책과 프로그램을 개발해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와 삶의 현장에서 외국인이나 귀화 한국인들이 서로 어울려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점에서 중앙정부 주도보다는 지자체와 지역 주민의 참여가 중요하다.

다문화가정은 절반(Half)이 아닌 이중언어, 문화를 이해하고 양국 간에 가교역할을 하는 자원(Double)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사회로 성숙되어갈 때 불행했던 한(恨)맺힌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밝고 희망찬 미래로 승화될 수 있다. 새로운 역사의 지평을 열어가자.

 

▲ 1980년대에 재일코리언들이 벌였던 지문날인 거부운동 모습. <사진:중앙일보>
▲ 1980년대에 재일코리언들이 벌였던 지문날인 거부운동 모습. <사진:중앙일보>

공생은 지역에서부터 '가와사키(川崎)시'

혁신자치체(革新自治體)란"혁신세력 을 신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역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하고, 혁신정당이 지방자치 레벨에서부터 통치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 따라 일본에서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에 걸쳐 자치단체장이 혁신계 정당 추천과 주민운동 세력 지지를 받아 당선된 지방자치단체를 말한다.

혁신자치체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도쿄 인근의 가와사키(川崎)시이다. 중화학 공업단지가 있어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공단도시로 집값이 싸기 때문에 재일코리언들도 많이 살고 있는 도시이다. 가와사키시는 재일코리언들을 비롯해 외국인 인권옹호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85년 재일코리언 차별의 상징인 '지문날인'을 1만명이 넘는 재일코리언들이 거부하자 일본 정부는 사법처리를 공언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재일코리언들을 고발하고 법원은 모조리 유죄를 선고하는 와중에 유일하게 고발을 거부한 곳이 가와사키시였다.

"법과 규칙이 인간애(愛)를 넘어설 수 없다"는 시장의 외침에 여론이 움직였고, 8년 뒤 '지문날인제도'는 철폐되었다. 1996년에는 공무원 임용 국적 조항도 없앴다.

최근 우경화된 일본 국내 상황에도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규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도시이다. '차별 없는 인권존중 마을 만들기 조례'를 만들어 헤이트 스피치 금지 상습 위반자에게 벌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가와사키시의 이런 모습은 혁신자치체운동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삶을 지원하는 사회기반 시설은 열악했고, 여기에 철강제철공장에서 내뿜는 오염물질로 대기오염, 수질 악화 등의 공해문제도 심각했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지자체 공무원 노조가 주축이 되어 민간 대기업노조를 설득해 삶의 질을 개선 하기 위해 적극 나섰다.

또한 경제 성장과 생산성 향상만 추구하는 문제점에 대해 생산보다는 주민들의 삶을 지키기 위한 복지를 슬로건으로 내건 사공연합(사회당+공산당)과 노동운동이 결합해서 큰 성과를 얻어냈다. 혁신자치체는 지방자치의 질을 향상시켰고 정책으로 주도해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성과를 냈다.

공생사회건설이 지역사회 단위에서부터 실현되어야 하는 이유는 통일성과 획일성을 추구하는 중앙보다는 다양성과 독창성에 기초를 둔 지방분권적 가치가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복지 및 교육·문화 등 공공서비스의 양적인 성장에서 질적인 발전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의미하며, 지역문제는 지역주민의 손으로 해결해나가는 상향식 문제 해결 방식을 지향한다.

'공생사회'를 만드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주민들 손에 달려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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