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수(향교삼호학당 전 학장)

 
 

"가장 바람직한 삶은 모든 장소에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이 지구상에서 숨 쉬고 있는 생명체 중 오직 인간만 글이 있고 문화가 있어 만물의 영장이라 했는지도 모른다.

배움이 중요해 '공부는 평생 해야 한다'는 데에는 수긍하지만 실천에 옮기는 데는 말과 같이 쉽지 않아 나이 들면 책과 벽을 쌓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것이 1999년 9월 학당을 설립한 동기가 됐다.

당시 박호배, 윤병진 두 분 한학자는 해남종합사회복지관 내에 사료연구실이라는 간판을 걸고 군사(郡史)연구에 몰두하셨고, 김정진 한학자는 사회복지관 전무직을 맡고 계셨는데 나를 끌어들여 우리 네사람은 함께 어울릴 때가 많아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이념으로 학당을 개설해 보자는데 의견을 같이해 학당이 태동하게 됐고, 그 해 9월 '해남삼호학당'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출범한 것이다.

임원은 초대학장으로 박호배, 부학장에 윤병지·김정진·교무 김금수가 각기 맡았고 학우는 20여명으로 시작해 점진적으로 더해 3년 내 150여명으로 늘어났고 현재까지도 그 수는 유지되고 있다.

2003년에 현 위치인 유림회관으로 장소를 옮김을 계기로 학당명칭을 '해남향교삼호학당'으로 변경, 오늘에 이르렀으나 향교 유림 뿐이 아니고 어느 누구도 수시로 입학할 수 있게 문호가 열려있으며 여성분들도 20여명 참가하고 있으나 대부분 비유림이다.

앞에서 밝혔듯이 필자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고락을 함께해왔기에 그 애정이 남다르다. 실로 한때 큰 수난도 있었고 위기를 극복한 고충도 겪었으며 한편으로 선배학장(박호배, 윤병진, 김정진)님들이 쌓아온 금자탑에 누가 될까 노심초사 했고, 외람되지만 내 모든 것을 바쳐온 학당이다.

비록 현직에서 물러나지만 내 생이 다 할 때까지 학당을 내 분신으로 삼고 최선을 다 할 생각이다. 또 내가 소신껏 돕도록 고문으로 추대해 준 학우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장성년 후임학장이 시대 변천에 따라 학당이 학문 심취만이 아니고 어르신네들이 어느 때고 편하게 드나들며 담소를 즐기는 쉼터가 되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밝힌바 있다.

우리네 정서는 '내'가 아니고 '우리'다. 서양인들처럼 나 'I'로 우뚝 선 작대기 하나가 아니고 사람 '人' 두 개의 막대기가 서로 의지하고 있는 우리다. 초로와 같은 짧은 인생이니 얼싸안으면서 종착역에서 후회 없이 헤어지자는 것이다.

뜨는 해보다 저녁노을이 더 아름답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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