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임금의 신임을 받으며 18년간이나 영의정을 지낸 황희 정승이 혈기 왕성하고 오만했던 젊은 시절 친구집에 가다 들판에서 잠시 쉬게 되었는데 누렁소와 검정소를 부리며 논을 가는 농부를 만났다.

"누렁소와 검은소 중 어떤 소가 더 일을 잘 합니까?" 하고 황희가 큰소리로 물어보니 농부가 밭을 갈다말고 가까이 다가와 옷소매를 잡아당겨 소들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데리고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누렁소가 검은소 보다 일을 잘한답니다" 황희는 귓속말을 듣고 "그것을 꼭 귓속말로 할 것은 무엇이오?" 하고 반문하니 농부는 또 조용히 "모르는 말씀하지 마시오.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자기를 욕하고 흉을 보면 기분이 상하게 되는 것이오" 하고 밭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동물에게도 그리해야할진대 사람에게는 말해 무엇하랴.

2003년 사전에 없는 말 신조어로 "검사(檢事)스럽다"라는 말이 꼽힌 적이 있다. "행동이나 성격이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논리 없이 자기 주장만 되풀이하는 데가 있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2003년 3월 고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간 대화의 자리에서 검사들이 보인 작태를 보고 네티즌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은 박 모 검사가 대통령에게 "모 언론기사를 보면 대통령님께서 83학번이다 라는 보도를 제가 어디서 봤습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제가 83학번인데 '동기생이 대통령이 됐구나'라고 생각했다" 하는 대목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상고를 졸업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임에도 '83학번' 운운하며 '학벌 콤플렉스'를 건드린 것은 고졸 비주류 출신 대통령에 대한 비하가 담겨있었다.

기득권 강자에는 순응하고 약자에는 강한 검사들이 요즘 말로하면 '아싸(아웃사이더) 대통령'에게 한 수 훈수라도 하듯 분수를 모르고 날뛰어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었다. 대통령이 수평적인 토론을 해보고자 마련한 자리는 오만하고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도 없는 검사들에겐 과분했다.

검찰은 군사독재정권 하수인 노릇을 나름 충실히 했지만 당시엔 오히려 경찰, 안기부, 보안사 등 위세에 눌려있었다. 법도 아랑곳없이 독재자 마음대로 군림하던 시절이 국민의 피와 눈물로 민주화가 된 이후에 아이러니 하게도 검찰이 법위에 군림하는 권력이 되면서 조직과 권한이 더 켜져왔다.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라는 채찍과 당근을 양손에 쥐고 우리 사회의 노동자나 약자들에게는 인정사정 없이 채찍을 휘두르고 강자·재벌에게는 자의적으로 '불기소'라는 특혜를 주면서 국민의 편에 서서 헌신하기보다는 조직과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해왔다.

검찰이 견제없는 독점적 권력을 휘두르는 것에 대한 대수술이 필요불가결한 것은 오만한 검사들이 지금도 검찰 조직 상층부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생 공부를 통해 성찰하면서 성숙해지고 사려가 깊어지듯, 지금 국민들이 검찰에게 요구하는 것은 통제받지 않던 지난 세월의 '오만'에서 벗어나 오직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겸손'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알라고 외치고 있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