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시인)

 
 

해남 진입지점 계곡면 입구에 설치된 공룡뼈 아치조형물의 노후화를 두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맨 처음 이 자리에 조형물이 들어섰을 때 아무 뜻도 형상의 생김새도 모른 체 그냥 의미 없는 생경한 구조물을 세웠다고 반대한 이들을 보았다. 그거 거두어내고 그 자리에 해남의 상징 고구마를 그려 넣자고 열을 내는 이들도 있었다. 해남의 상징 고구마를 세우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그것을 현대적으로 형상화시켜야 하고, 조형물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떤 체험감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그게 만만하게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형물에 대한 나의 입장은 현재의 조형물 유지 보완 쪽이다. 해당 조형물은 공룡의 꼬리뼈를 현대적으로 형상화했다. 나는 작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내 느낌으로 말하자면 해남의 어디에도 이만큼 현대적이고 잘 형상화된 미술 작품은 없다. 땅끝에 조각공원이 있지만 거기에 있는 작품들 중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현대적인 작품은 없다. 그래서 조각공원엔 사람도 오지 않는다.

나의 조형물 감상법을 소개한다. 늦은 밤 광주를 다녀오면서 운전에 지친 몸이 성전을 넘어 해남으로 들어오는 위치에 조형물은 서있다. 사방은 어둡고 사위는 조용한데 공룡의 꼬리뼈를 비추는 조명이 무서운 분위기를 살짝 더한다. 조형물은 공룡의 꼬리뼈이고 꼬리뼈에서 도로 밖으로 연결된 산은 공룡의 몸통이 된다. 어둠 속에 공룡은 산으로 들어가는 중인데 아직 꼬리뼈가 도로에 남겨진 모양이다. 나는 무서운 공룡에게 들킬라 조심하며 꼬리뼈 아래를 살짝 통과해간다. 졸린 눈이 떠지면서 잠간 서늘해진다. 그러면서 오늘도 무사히 공룡을 잘 지나왔어, 잘가라 공룡아! 인사를 보내는 동심어린 마음이 된다.

이런 감상이 반복되면서 나는 조형물 아래를 지날 때마다 은근히 그 짧은 순간의 서늘함이 또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되었다. 공룡의 머리는 산 속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아 내 상상력을 더 자극시킨다. 이런 체험 덕분에 우리집 아이들도 외지에서 집으로 내려올 때 늘 나에게 '인제 공룡뼈 지났어' 하고 해남 도착 메시지를 넣곤 한다. 아이들도 그때마다 재미있고 고향이 더 친근해진다 한다.

다른 도시의 입구에 서있는 어떤 조형물에서 이런 감흥을 느낀 적 없었다. 이만큼 현대적 감각을 잘 갖추었고 동시에 체험감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도 드물다. 공룡에 관광객이 시들해지면서 사람들은 괜스레 조형물에까지 냉소를 퍼붓는 듯하다. 그러나 우항리를 세계적 공룡테마공원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아직도 살아있다.

해남을 알리는 관광해설사분들이 관광버스에 탄 손님들에게 저 조형물이 공룡의 꼬리라고, 그 옆에 산이 공룡의 몸통이라고, 우리들은 지금 공룡 몰래 슬쩍 꼬리뼈를 통과하는 중이니까 들키지 않게 잠시 조용히 하자고, 이 공룡이 잘 먹는 게 해남 고구마라고, 월동배추를 먹어서 겨울도 잘 넘긴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너무 심했나?) 공룡의 메카 해남 우항리를 알리고 여기서부터 해남입니다! 라고 웃으면 강렬한 해남 이미지가 심어질 것이다. 이런 스토리를 해남 사람들에게, 방문객들에게 더 널리 알리는 게 중요하다.

현대적 감각과 체험감을 살려내지 못하는 조형물은 거꾸로 해남의 후진성을 알리는 광고판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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