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디아스포라' 재일코리언의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우리의 과제
5. "개도 이름은 하나다" 용기 있는 본명 선언자기 이름은 자기정체성의 상징
차별과 억압으로 본명 사용 어려워
배충진  |  cj-bae@h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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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30  15: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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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싣는 순서|

① 한민족과 디아스포라
② 재일코리언의 역사
③ 재일코리언의 현실 Ⅰ(오사카 코리아타운)
④ 재일코리언의 현실 Ⅱ(교토 우토로마을)
⑤ 재일코리언 마이너리티로서의 정체성
⑥ 차별과 동화 압력을 넘어 미래로
⑦ 다양성과 관용 가치실현을 위한 지역의 과제

 

 

 

   
▲ 오사카성 앞에 피어있는 나라꽃 무궁화꽃.
   
▲ 우토로 마을에 피어있는 무궁화꽃. 마을 건너편으로는 육상자위대 주둔지가 자리잡고 있다.
   
▲ 우토로 마을의 재일코리언 집 문패.

이름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방법에는 민족 고유의 전통이나 문화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재일코리언 중 약 20%는 본명(민족명)을 80% 다수는 일본 사회에서 통명(通名,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식 이름사용을 강요하는 역사적, 사회적 배경 때문에 재일코리언 대다수는 본명외에 일본식이름인 통명을 가지고 있다.

통명사용자는 남성보다도 여성에, 1세 보다는 2세·3세, 저학력자나 낮은 사회계층일수록 통명사용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는 주된 이유로는 본명을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차별이나 이지메 당하지 않기 위해, 사업이나 업무, 지역사회에서 생활에 지장이 있기 때문이라고 들고 있다.

창씨개명에 의한 황국신민화를 강제했던 일본은 패전 후 재일조선인을 해방민족으로 대우해 권리 회복과 옹호에 나서기 보다는 오히려 국적에 따른 차별과 편견을 노골화 했다. 일본 국적 박탈 후 '무권리' 상태에 놓였던 재일코리언들은 뿌리깊은 조선인 차별이 남아있는 일본사회에서 사회적 마찰을 피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통명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공적인 신분등록(인감등록)이나 사유재산 증명을 위한 부동산등기 등에 통명사용을 인정했다.

차별과 편견을 전제하고 살아가기 위한 '편의'로서 통명사용을 인정해 준 것임에도 재특회같은 일본 우익단체들은 통명사용을 일본인으로 위장하기 위한 '특권'으로 왜곡하고 혐오발언을 일삼고 있다.

이름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나타내는데도 중요하고 자신이 자기 이름을 결정하는것은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에 이것이 사회적 압력이나 차별에 의해서 침해받는 것은 커다란 문제이다.

재일코리언들이 소수자로서 정체성을 지키기위한 투쟁의 대표적인 사례로 박종석 히타치 취업차별 반대투쟁과 김경득 한국국적 변호사 등록운동 등이 있다.

- 박종석 취업차별 반대투쟁

일본 이름이 아라이 쇼지(新井鐘司) 박종석(朴鍾碩)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대기업인 히타치(日立)에 합격했다.

회사에서는 1주일 이내 호적 관련 서류를 제출토록 요구했고 서류를 제출하지 못한 박종석에 대해 히타치는 박종석 가명인 일본명으로 응시하고 호적란에도 출생지를 기록하는 등 허위사실을 기록했다는 이유로 히타치는 입사를 거부했다.

그는 취업을 포기했으나 동급생들과 동포학생들이 '박군을 둘러싼 모임'을 결성하고 1974년 '취업 차별' 소송을 제기해 재일코리언으로서 차별에 맞서는 투쟁을 시작했다.

박종석 사건은 일본 내에서 지식인들과 학생들 지지로 확산되고 한국과 미국에서 히타치 불매운동으로 번졌다. 요코하마 재판소는 히타치에 박종석 채용과 함께 합격자 발표일로부터 3년간 급여를 지불하도록 판결했다.

재일코리언이 일본사회에 대해 이뤄낸 성과를 계기로 세금을 내면서도 아무 혜택을 받지 못했던 재일코리언 권익향상을 위한 투쟁의 기폭제가 되어 공공임대 아파트 입주권리와 지방공무원 임용권리를 갖게되었지만지방참정권문제 해결은 아직도 요원하다.

- 최초 한국 국적 변호사 김경득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부모에게서 1949년 일본 와카야마시(和歌山市)에서 태어난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재일코리언임을 부끄러하며 숨기고 일본식 통명으로 일본인으로 살아왔다.

23세에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후 재일코리언에 대한 일본사회의 노골적인 차별 구조에 도전해 1976년 일본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2년간의 연수를 받아야 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그에게 합격통지서와 함께 귀화수속 서류를 보내왔다.

이전에도 13명의 외국인 합격자가 있었지만 모두 귀화를 하고 일본인으로 입소하였지만 그는 이것이 차별로부터 도피에 불과하고 차별은 자신이 잘못이 아닌 일본사회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본명 김경득과 한국 국적으로 입소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탄원서와 노력을 통해 한국국적으로 최초 변호사가 되었다.

수많은 재일코리언의 인권 옹호를 위해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그는 재일코리언의 정체성과 일본 평화헌법을 지키는데 앞장서줄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2006년 56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아들과 딸이 대를 이어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 인터뷰 | 고경일 사무국장(KMJ 재일코리언 마이너리티인권연구센터)

   
 

- 연구센터에서 주로 하는 일은.

오사카 이쿠노구는 거주주민의 1/5이 외국인이다. 재일코리언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겪고 있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상담소이다. 살아가면서 삶 속에서 겪는 세밀한 문제들에 대한 상담과 개선 활동, 그리고 한국, 역사 알리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재일코리언에 대한 차별은.

직장이나 조직 내에서 재일코리언에 대한 인권문제가 존재한다. 본명을 쓰게 되면 사회적 공격의 대상이 되거나 파워하라라고 하는 인간관계상 갈등이나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학교 교사는 될 수 있지만 관리자로 승진하기 어렵다. 공무원도 지자체에 따라 임용될 수 있지만 마찬가지다. 경찰이나 소방공무원은 임용될 수 없다.

   

▲ 재일코리언과 본명을

특집으로 다룬 KMJ 기관지 '사이'

- 재일코리언 차별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동화 압력과 차별이 일상적인 일본사회에서 공생의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본사회에는 재일코리언 뿐만 아니라 부락민, 아이누원주민, 장애인, 여성 등 인권이 침해받고 있다.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 매우 중요하지만 일본에서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법률 제정에 적극적이지 않다. 재일코리언들은 선거권이 없다. 참정권을 확보하는 것이 사회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실현에는 아직 난관이 많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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