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기(자유기고가)

 
 

1965년 중학생일 때 대흥사로 가을소풍을 갔다. 우리 반 친구들은 대웅전 마당에 모여 스님의 설명을 들었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 하나는 서산대사의 금 십자가 이야기다.

-임진왜란 때 승병대장으로 왜적을 크게 무찌른 서산대사는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포로를 구하기 위해 왜장과 담판을 벌인다. 그때 일본에 선교사로 와있던 신부를 만나게 된다. 신부는 스님에게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권한다. 스님은 담담히 부처님 말씀으로 설법한다. 스님의 설법에 감복한 선교사가 존경의 뜻으로 금 십자가를 스님에게 선물한다. 대사는 입적하기 전 자신의 의발을 대흥사에 보관하라고 유언한다. 이런 연유로 대흥사에는 대사의 의발을 비롯한 많은 유품을 보관하고 있다. 그중에 금 십자가도 있다-

함께 듣고 있던 친구 일수가 손을 번쩍 들더니 흥분한 목소리로 스님께 항의했다. 기독교를 모독한다는 이유였다. 그날 스님 설명이 역사적 사실관계는 다를 수도 있지만, 대흥사에 황금 십자가를 보관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십자가를 선물한 선교사는 포르투갈 출신 세스페데스 신부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러나 서산대사 설법에 선교사가 감동하여 금 십자가를 선물했다는 스님 설명은 기독교도인 친구 감정을 건들만했다.

아마 이러지 않았을까? 대사와 신부 두 현자는 자신이 믿는 종교의 우수함을 상대에게 전하기 위해 불꽃 튀는 토론을 했을 것이다. 두 분은 담론을 나누면서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는 공감이 생겼을 것이다. 하여 서로 가지고 있는 종교의 상징물을 선물로 주고받았을 것이다. 선교사는 대사에게 금 십자가를 선물로 주었으니, 대사는 아마도 염주를 선교사에게 선물로 주었을 것이다.

대웅전을 나와 일수랑 몇 명 친구들끼리 종무소에 들렀다. 종무소에는 노스님과 젊은 스님 두 분이 계셨다. 대웅전에서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일수가 두 스님께 불교를 도전적으로 비판했다. 노스님은 너그러운 미소로 듣기만 했으나, 젊은 스님은 흥분하여 말했다. "이분은 총무스님이시다. 총무스님도 예전에는 인천제물포고등학교 고문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이셨다는 말에 일수가 다소곳해졌다. 웃고만 계시던 스님이 우리들에게 말씀하셨다.

스님은 속세에 부인과 딸이 있다고 했다. 부인과 딸은 '박태선 장로교' 교인이라고 했다. 부인과 딸도 스님을 만나면, 개종하여 기독교를 믿어야 한다고 성화라 했다. 그러면 스님은 부인과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종교는 진리를 찾는 가지이다. 나는 불교라는 진리의 가지를 붙들고 있고, 당신과 딸은 기독교라는 진리의 가지를 붙들고 있다. 우리가 서로 붙들고 있는 진리의 가지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면 언젠가 진리의 본기둥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각자의 종교 믿으며 열심히 살자-

아직 어린 나로서는 처음 듣는 신선한 충격의 말씀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목사님 설교를 듣고 성경 공부를 하면서 불교는 배척해야 할 종교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총무스님은 친구의 비판은 물론, 딸과 부인의 개종 강요도 거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독교를 비판하지도 않았다. 설복한 것이다. 그날 이후 나의 비판적 불교관은 사라졌다. 나름 불교 서적을 읽으면서 불교의 이해를 넓혀왔다.

그 금 십자가를 도난당했다. 얼마 후 도둑은 잡혔으나 안타깝게도 십자가는 이미 녹여 없어진 뒤였다. 500여년 전 조선의 스님과 서양 선교사가 서로의 인품에 감동하고 상대의 종교를 존중하여 주고받은 선물이었을 금 십자가는, 황금에 눈이 먼 인간의 어리석은 탐욕으로 이렇게 사라져버렸다.

시대가 혼란스럽다. 종교가 제 역할을 못한 탓이 크다. 타종교도 서로 존중하면 좋겠다. 종교 간의 갈등을 없애면 좋겠다. 대사와 선교사처럼.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