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같은 어둠 속이나 아찔한 상황에서 모골이 송연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머리카락이 안테나 같은 역할을 한다는 말이 이해된다. 수험생이나 운동선수, 운전기사 분들이 머리를 짧게 깎는 것은 잡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고 반대로 예술가나 로커들의 긴 머리는 예술적 상상력이나 감응력 향상이 창작 활동에 도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라 부르고 불가에 귀의하면 속세의 아집·교만·유혹 등을 떨쳐내고 수행자로서 본분을 다한다는 의미로 삭발하는 종교의식을 치른다.

스님머리처럼 파르라하니 머리를 밀어버리는 것을 '백호친다'고 말하지만 '배코치다'가 올바른 표현이다. '배코'란 상투를 앉히기 위해 정수리 부분의 머리털을 깎아낸 자리를 말하기에 배코치다는 말은 상투 밑의 머리털을 돌려 깎는다는 표현이지만 사람이 면도하듯이 머리를 빡빡 깎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선 말기에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상투를 트는 풍속을 없애고 머리를 짧게 자르도록 한 단발령이 내려졌다. 효경(孝經)에 나오는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는 구절처럼 몸과 머리털, 피부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라는 기존관념에서는 머리를 자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목숨을 걸고 저항했다.

일제강점기, 독재정권 시기에 삭발은 대개 수치심을 주기 위해 동원되는 체벌이나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40여년 전 이야기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는 유독히 두발단속이 심했다. 예고없는 두발검사에 조금만 머리가 길어도 앞쪽이나 뒤쪽에 사정없이 바리캉으로 고속도로를 냈다. 이런 횡포에 용감한 친구는 과감하게 배코머리를 하고 다음날 학교에 나타나면 선생님한테 "이자식이 반항한다"며 또 다시 혼나고 반성문을 써야했던 시절이었다.

군부독재 시절을 통과하면서 삭발은 저항의 코드가 되었다. 'DOC와 함께 춤을' 이라는 노래에 "뒷통수가 이뻐야만 빡빡 미나요/ 뒷통수가 안이뻐도 빡빡 밀어요/ 그러나 주위사람 내머리를 보면 /한마디하죠 (너 사회에 불만있냐?)" 가사가 나오듯이 언제부턴가 머리를 빡빡 미는 것은 불만과 저항의 표현으로 읽히고 있다.

그런데 불과 몇해전에 국정을 분탕질 하던 무리들이 연일 삭발 릴레이를 펼치고 있다. 당대표 에서부터 지금까지 삭발한 사람이 열손가락으로 다 셀수 없을 만큼이다. 그런데 삭발정국에 비장감이나 동정심이 들기보다는 정치인들의 자기퍼포먼스 일환으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 총선이 목전이 아니라면 이처럼 너도나도 삭발에 나설까하는 생각이 든다.

옛말에 "벌초 자리는 좁아지고 배코자리는 넓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벌초는 마지못해 하는 탓으로 그 구역이 차차로 줄어들고 작아도 될 배코자리는 쓸데없이 자꾸 넓어지기만 한다는 의미이다.

촛불로 탄생한 정권이 촛불을 불러오는 어이없는 현실에서 촛불 민심을 대변하지 못한 자신들을 반성하며 새롭게 다잡는 의미로, 선거보다는 국민들 행복한 삶을 위해 자기를 헌신하는 서약으로 배코머리 할 정치인은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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