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전 고등학교 교사)

 
 

조국 사태는 아직도 향배를 가늠하기 쉽지 않고 여전히 메가톤급의 정치적 폭발성을 갖고 있다. 이 사태는 엉뚱하게도 우리 사회의 계급, 교육, 입시제도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진영 논리로 나뉘어 감정적 대립만 일삼는 가운데서도 합리적으로 제기된 게 그나마 교육, 입시제도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차에 아뿔싸! 진영 대립의 여파가 너무 커서 제기된 입시문제의 해결 방향마저 감정에 휩쓸려 가려한다. 걱정이다.

입시제도를 세밀하게 알 수 없는 대중들에게 논문이란 대학, 대학원 졸업을 앞둔 이들에게나 필요한 자신과는 아득하게 거리가 먼 것, 수년을 깊이 있는 연구에 바치고서야 겨우 얻을 수 있는 전문적인 어떤 것, 일반인에겐 접근이나 상상이 어려운 영역의 어떤 것이었다.

고등학생 자녀에게 논문의 저자 위상을 안겨주어 스카이를 향해 날아오르게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대중의 충격을 깊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중들은 어떻게도 해볼 수 없다는 격차감과 저들의 학벌을 향한 대담하고도 세밀한 준비에 경악했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아득했을 것이다.(물론 대학입시에 사용된 논문들은 에세이 수준의 두 장짜리 형식만 갖춘 것들이 그냥 통용되었던 게 현실이며, 논문에 자녀를 저자로 무임승차로 끼워넣기한 이들은 상층의 집안에선 흔하고도 많았다는 사실은 따로 중요하다).

이 격차의 실감을 감정을 덜어내고 이성적으로 바라보니 계급의 관점이 아니면 세상을 보고 해석할 수 없겠다는 결론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동시에 문제의 재발방지와 차단을 위해서 입시제도에서 문제를 찾으려는 자세도 합리적이다.

문제를 제기한 이들은 입시제도 중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이 갖고 있는 문제의 한 귀퉁이를 짚었지만 분노와 박탈감에 시달리던 대중들은 아주 이 기회에 학종을 없애버리고 수학능력시험 전형(이하 수능)으로 입학생을 뽑는 것이 대입시에서 부정을 줄이는 공평한 방식이라는 단순논리로 회귀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보수 언론들은 이때다 하면서 학종 폐지!에 소리를 높여가고 있고.

수능은 5지선다형 문제라서 딱 떨어지게 공평한 시험처럼 보이지만 사교육을 더 많이, 더 일찍 받는 상층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통계와 연구는 차고 넘친다. 어떤 통계를 살펴보거나 강남의 최상층 학부모들은 학종보다 수능을 선호하고, 수능을 통해 스카이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압도적 다수도 강남의 최상층 자녀들이다. 단언하건데 학종을 폐지하면 해남고등학교에서 스카이 진학은 꿈꾸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과중한 입시로 학교교육이 입시학원처럼 운영되고 엉망이 되어버린 지금, 공교육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확실한 길도 학종 중심의 입시제도라는 점도 분명히 하자. 분노도 절망감도 이해하지만 이성적으로 현실적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조국문제는 조국 문제대로 풀어가되 입시제도는 따로 이성적으로 보고 풀어가야 한다. 지역의 학생들에게 가난한 학생들에게 불리할 게 명백한 수능 중심체제로 가는 건 폭망이 아닐 수 없다.

학종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 학종의 실제 운영을 더 공평하게 하라!는 요구가 빗발쳐야 할 시점에서 수능만이 공정하다는 주장은 거꾸로 가는 길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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