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올림픽이 내년으로 다가오면서 연일 후쿠시마 관련 뉴스가 관심을 끌고 있다. 2011년 3.11 대지진에 이은 쓰나미로 원자력 발전소 노심용융으로 인한 수소폭발사고로 방사능에 오염되어 강제 피난령이 내려졌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일본 아베정권은 2020도쿄올림픽을 '부흥올림픽·패럴림픽'을 내세우며 원전폭발에서 완전히 정상화되어 8년전 죽음의 땅에서 이제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회복되었음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계획으로 있다. 성화가 후쿠시마에서 출발하고 축구,야구와 소프트볼 경기를 후쿠시마에서 열고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올림픽 참가선수단 식재료로 사용하겠다는 복안이다.

후쿠시마가 속해있는 혼슈 북부 6개현을 도호쿠(東北)지방이라 부른다. 평탄지가 적고 춥고 눈이 많이 와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많고 역사적으로 화산 폭발로 인한 냉해와 홍수, 지진, 일기 불순 등 계속되는 재해로 아사자가 속출했던 지역이었다.

1868년 메이지유신 주축이었던 삿초동맹(薩長同盟)에 정면으로 대항했다 패배했던 관계로 도후쿠 지역에 기반을 두었던 번주들은 궁색한 처지에 내몰렸다. 도호쿠 지역 특히 후쿠시마에서는 번벌에 저항하여 자유와 민권을 주장하는 민권결사가 조직되고 농촌각지에 학습회가 열렸다. 기근에 처한 농민들을 위로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고자했던 농민운동과 자주민권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지역이었다.

자유민권 세력은 메이지 정부에 의해 진압되었고 이후 '부국강병 식산흥업'을 내세운 메이지 정부 근대화 정책의 투자나 개발에서 도호쿠 지역은 소외되었다. 도호쿠지방은 농촌은 경작지 면적이 작고 그나마 토지를 갖지 못한 소작농이 태반으로 농촌 경제기반은 취약했고 조선으로부터 쌀 수탈로 인해 쌀가격이 하락하면서 많은 젊은 사람들이 여공이나 각종노동자로 도시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농민은 최하층 계급이었고 흉작시에는 딸을 인신매매해 생계를 보전하는 암담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농촌 빈곤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군대가 탈출구였다. "군부가 대륙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 농촌의 힘든 생활에서 벗어나는 길이다"라고 착각해 전쟁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병사들의 절반 이상은 가난한 농촌 출신이었다. 제국주의 군부가 가난한 농촌의 젊은이를 무모한 전쟁에 동원했듯이 전후 고도성장에서 소외되어 가난이 일상화된 농어촌지역은 원전에서 흘러나오는 보조금 앞에 속수무책이었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원전사고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국가는 허용 방사능기준치를 1밀리시버트(mSv)에서 20밀리시버트로 상향조정하고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면서 피난민들의 귀환을 강요하고 있다. 지역주민을 볼모로 내세워 올림픽을 치루려 하고 있다.

'국민의 뜻이 정치'를 바꾼다며 반원전을 제2의 자유민권운동으로 생각하며 투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수는 살기위해서 드러내놓고 방사능 오염을 비판할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어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어 침묵하고 있는 것이 저항과 민권운동 중심이었던 후쿠시마의 현실이다.

민권과 인권을 유린하면서 외치고 있는 아베정권의 부흥의 목소리는 그래서 공허하고 사상누각 같이 위태롭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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