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시인)

 
 

사람을 판단하는데 새로운 기준이 하나 더 생겼다. 거창하게 판단기준이랄 것도 없이 그냥 말 많은 사람은 별로라는 거다. 동양에서야 말 많은 걸 진즉부터 경계하는 풍토가 있었지만 말 많다고 무조건 아니다! 라고 평가절하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바뀌었다. 말이 많은 사람은 왜 싫은가. 나도 어느 자리에서나 말이 많았던 편에 가깝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말 깨나 했던 축에 속할 것이니 이런 기준은 자신에 대한 반성문이기도하니, 이 칼날은 나를 향해 돌아오기도 할 것이다.

어느 자리에서 특정인이 말을 더 많이 하는 건 다른 사람의 말할 기회를 줄이고 막는다는 점에서 평등을 깨트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참이며 들어두면 도움이 될 만한 말이라고 착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말이 참이고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모두에게 일어나는 착각이다. 어떤 말도 세상의 모두에게 참인 말은 없고, 어떤 이에겐 세상의 어떤 말도 듣기 싫은 순간이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세 명이 모여서 한 시간을 보낼 때 내 말의 총 시간이 20분을 넘기는 건 다른 사람에 대한 침해이고, 다른 이의 말할 기회를 뺏은 거고, 비민주적이라는 계산법을 엄격히 적용하자.

일방적으로 말을 듣기만 하겠다고 허락한 자리가 강연회자리다. 듣는 이 모두가 그의 말을 듣겠다고 사전 합의한 자리인 거다. 합의라 해도 이 비민주적 불균형을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일까 요즘은 강연회는 사라지고 토크쇼의 형식이 많아진다.

말 많은 사람의 말은 대부분이 자기자랑이다. 자기자랑이 아니라 그냥 객관적인 말을 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은근히, 결과적으로 자랑을 하고 있다. 지식을 설파하면 자랑이 아니라 생각하지만 자기가 이 만큼 많이 안다는 자기 지식 자랑이다.

과거사실을 설파하는 건 시대상의 변천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론 자기가 살아온 이력이 이 만큼이라고 자랑하는 것이다. 자랑은 듣는 이를 유쾌하게 만들지 못한다. 자랑은 우월감을 나타내는 것이고 상대에 대한 지적질이거나 꾸지람일 때가 많다. 자랑질 멈추자.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수업방식은 강의식 수업이다. 교사 혼자만 말하고 학생은 듣기만 하는 형식이라 그렇다. 강의라는 형식 안엔 교사가 만능이라는 권위가 저절로 자리잡게 된다. 강의는 교사의 일방적인 자기자랑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설명하는 체 하지만 교사의 지식자랑이다. 학생들은 체계화해서 표출하진 않지만 본능적으로 그 수업에 권위와 자랑질이 들어있다는 걸 알기에 싫어하는 거다.

들어주기에 가장 피곤한 경우는 실패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위안삼기 위해 말을 많이 할 때다. 지금 이러고 있지만 내가 과거엔 저랬다는 걸 알아주라는 말이다. 이건 넋두리다. 비민주나 자랑질도 문제지만 넋두리를 들어주는 게 가장 힘들다. 이걸 들어주려면 심리상담사쯤 되어서 상대를 이해하고 치유하는 경청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상담수임료를 받아도 쉽지 않은 일이다.

묵언이 불가의 중요한 수행방식이 되는 이유를 좀 알 것도 같다. 나이가 들면 지갑을 열고 입은 다물라는 말은 모두에게 필요한 말이다. 나같이 인격이 덜 된 사람, 실패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말이지만 다짐한다. 말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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