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농부)

 
 

어딘가 초대되어 갔을 때 깔끔한 실내와 정갈한 음식을 대하면 눈이 긴장하고 몸이 경직된다. 자유롭지가 않다. 무언가에 매인 듯하다. 어딘가에 자유롭게 눕고 싶고 앉고 싶어도 불편하다. 눈은 청결할지 모르지만, 몸 둘 바 모르는 손과 다리는 불편하다.

입은 정갈할지 모르지만 맛이 머무르지 못하고 배고프다. 어울리기 어려운 분위기에 어색함을 숨기느라 바쁘다. 좀 수더분하고 편안함에 몸이 배인 터라 그렇게 깔끔하게 가꾼 정성이 오히려 멀게 느껴진다. 조금만 티끌이 보여도 안 좋게 보일까 봐 근심이 생긴다.

치울 쓰레기조차 없이 살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더럽게 살자는 말은 아니다. 넉넉함은 지나친 긴장 속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긴장의 연속에서 살아가느라 바쁘다지만 쉬는 일상이라도 자유롭게 풀어 놓아주면 좋겠다.

사소한 언어에 예민함, 그것은 지나친 깔끔함이다. 주위의 사소한 평판에 민감함은 자신의 삶을 너무나 정갈하게 하려 함이다. 때론 틀리고 실수하고 그래서 사과하고 반성하고, 그것이 인간 아니겠는가. 티끌 모으는 악착같은 부지런함보다 티끌 털고 나누어 주고 털털하게 어울리는 여유가 더 좋아 보인다.

시골에 산업화 도로를 놓음은 머물지 않고 고속으로 어디론가 간다는 말이다. 여유는커녕 머물 시간조차 없다는 말이다. 교통, 그것은 막힌 곳에 길을 놓고 편하게 다니자는 말이지, 삶을 바삐 굴리며 살자는 말은 아니다. 모두가 바쁘게 사는 마당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시골에 고속도로 놓는다고 나의 삶이 고속화되겠는가. 고속도로 옆에서 더욱더 우리는 소외되고 급하게 떠나간 자식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패스트 음식', 비만을 부르고 만병의 원인이라고 하지 않던가. '패스트 교통', 빈집을 부르고 만인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 시골에 머무르지 않고 지나가는 교통, 그 고속도로와 산업화 도로는 농촌지역에 어울리지 않는 교통이다. '슬로우 교통', 머무는 교통이 농촌 지역을 살린다. 몇 명 타지 않아도 구석구석 피가 돌도록 끊임없이 정시에 자주 운행하는 버스가 있다면 그것은 큰 효자다. 서로 천천히 가는 교통이 있어, 굳이 자가용이 필요 없고, 장날 나서는 발걸음도 가볍다. 이웃간에 자주 왕래해서 좋고, 음주 운전도 줄지 않겠는가. 그것이 인간적인 '교통'이고 참다운 '소통'이다.

인간의 만남도 차가 주인인 깔끔한 고속도로가 아니라 사람의 발걸음이 주인인 오솔길과 버스를 필요로 한다. 휙 지나가는 인연이 아니고 머무는 인연이 필요하다. 무애 그리 바쁘게 사는가. 곧 이삿짐 싸서 도회지로 떠날 참인가. 가서 도시의 한구석 차지하고 기약 없는 노동자로 살다가 몸이 피폐해지면 돌아올 텐가.

치울 쓰레기도 없이 사는 삶처럼 살지 말고 긴장의 끈을 놓고 여유를 찾아보자. 해남을 지나가는 고속도로가 생긴다면 그것은 해남에 머무르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니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 고속도로를 만들어 무엇에 쓸 참인가. 대형 건설업자 등 따숩게 해서 무엇에 쓸텐가. 천천히 같이 가고, 그 속에서 넉넉함을 찾고 모두가 지친 몸을 쉬러 오는 고장, 거기에 오래된 추억이 웃고 여유 있는 미래가 달려오리라. 새것은 정갈할지라도 머물기 쉽지 않다.

요즈음 민관 할 것 없이 무얼 하든지 여백이 없다. 여유가 없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깔끔함도 정갈함도 아닌 어울림이다.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완행버스를 더 많이 놓아 보자. 머무르면서 먼지 좀 털고 삶의 여유를 찾아보자. 그 안에서 소중한 인연들이 맺히고 맺혀서 공동체가 점점 늘어나는 꿈을 꾸자.

머무는 인연이 많은 땅이 좋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